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분별의 잣대는 사랑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 |||
---|---|---|---|---|
이전글 | 눈부시게 아름다운 감동 | |||
다음글 |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 |||
작성자선우경
![]() ![]() |
작성일2025-07-18 | 조회수90 | 추천수5 |
반대(0)
![]() |
2025.7.18.연중 제15주간 금요일
탈출11,10-12.14 마태12,1-8
분별의 잣대는 사랑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은 나의 힘, 내 노래이시니, 당신이 나를 구하셨도다.”(시편118,14)
어제 금요강론을 준비하면서 읽은, 그 유명한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유명한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수도승은 보통 ‘축복된 모호함’(blessed obscurity) 속에서 살아간다”는 구절입니다. ‘축복된 모호함’이란 말마디에 공감합니다. 어찌 수도승뿐이겠습니까? 비단 수도승뿐 아니라 하나하나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 축복의 사랑 속에 살아갑니다.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아름다운 기도도 하나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의 향기를 퍼뜨리도록 도와주소서 제 영혼에 당신의 영과 생명으로 가득차게 하소서 제 존재 전체를 온전히 관통하여 소유하시어 제 삶 전체가 당신의 빛으로 가득 차게 해 주소서 저를 통해 빛나시고 제 안에 거하셔서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제 안에 당신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들이 위를 올려다보고 저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보게 해 주소서.”
또 어제 제77주년 제헌절 경축시 참석한 요인들이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특기할 것은 요즘 정부가 행사시에는 애국가는 반드시 4절까지 부른다는 것입니다. 잠시 유투브에서 본 경축식 행사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작년 12월3일 비상계엄후 올해 6월3일 대통령 선거까지 조마조마 불안해 했던 반년을 되돌아 보면, 정말 애국가 가사 그대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임을 새로이 체험하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값싼 은총이, 값싼 믿음이, 값싼 평화가 없듯이, 결코 값싼 민주주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상응하는 사람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선 불철주야 침묵중에 묵묵히 온갖 노력을 다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탈출기를 통해 보여 주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활약이 참 눈부시고 놀랍습니다.
오늘 탈출기는 하느님의 절대적 보호와 인도하에 이집트의 모든 방해 활동을 평정하고 탈출하는 모세를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의 장엄한 모습을, 파스카 축제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파스카 성야 미사중 반드시 생략할 수 없는 독서가 바로 오늘 파스카 축제가 소개되는 탈출기 독서입니다.
종살이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대 전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매해 이 기념비적 역사적 구원 사건을 전례를 통해 현재화 할 것을 명하십니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이스라엘의 파스카가 키워 온 희망은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취됩니다. 우리는 1년에 한번이 아니라 날마다 파스카 미사전례를 거행함으로 늘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을, 파스카의 삶을 살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펼치시는 활약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본 바리사이들은 즉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사랑의 숲은 보지 못하고 율법 조항의 나무들만 보는 편협과 편견의 바리사이들입니다. 이 또한 일종의 무지의 병입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제자들의 배고픈 현실을 도외시하고 안식일법이라는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바리사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법이 있다면 절대적 법인 사랑뿐임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과 사제들의 예를 들면서 제자들의 행위를 두둔하십니다.
탈출기의 모세나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 빵을 먹었던 다윗처럼, 하느님 사랑에 정통해 있던 예수님이심은 다음 확신에 넘친 말씀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전폭적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음을 체험했기에 이리도 당당한 것입니다. 바로 다음 말씀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자 절정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판단의 잣대는 안식일법이 아니라 자비임을 봅니다. 하느님 눈에는 제자들을 단죄한 바리사이들이 죄인이고 배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제자들은 무죄입니다. 성전보다 더 큰,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듯, 바로 예수님이 분별의 최종 잣대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화신인 예수님은 어떻게 분별하셨을까 생각하면 즉시 답이 나옵니다. 어제 읽은 다산 현자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그대로 파스카 예수님을 닮은 사람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고, 자신에게 떳떳하게 행동하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어른이 되고 일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며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