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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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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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24 | 조회수66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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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마태 13,10-17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포하신 내용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 즉 하느님 나라에 대한 것을 ‘땅’ 즉 세상의 언어로 가르치시려니 그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시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논리와 규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이해하기 쉽게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오늘 복음의 뒷부분에서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ㄴ)라고 평가할 정도로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지요. 그러나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하시는 대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기에, 그 이유가 궁금해진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늘나라에 대한 내용을 소수의 ‘선택받은 이’에게만 알려주시고 다른 이들에게는 숨기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태도는 의인과 죄인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뜻에도 맞지 않지요. 이 말씀은 하늘나라에 대한 내용이 하느님께서 열어 보여주시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우리가 당신 뜻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며 따르기를 바라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열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실천하는 이들은 그 안에 담긴 심오한 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이들은 오해와 무지의 어둠 속에 갇힌 채 불행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은 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하늘나라의 신비를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들이 자초한 일이기에 예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눈과 귀를 막고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강압적으로 진리를 밀어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반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그저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없이 멀쩡해서 행복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과 눈이 하느님을 향해 활짝 열려있기에,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순명으로 그분 말씀을 듣기에,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고 하늘나라의 삶을 미리 살아감으로써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길이 세속적 부와 성공과 명예를 보장하지 않는 걸 알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해 주님을 따르는 철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신비를 우리 철부지들에게서 드러내 보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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