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너무 기쁘니까,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 |||
---|---|---|---|---|
이전글 |
이영근 신부님_“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 |
|||
다음글 |
반영억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주세요.._ 세상의 병고를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서.. ![]() |
|||
작성자최원석
![]() ![]() |
작성일2025-07-30 | 조회수40 | 추천수4 |
반대(0)
![]() |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1)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는 표현만 조금 다를 뿐이고, ‘같은 비유’입니다. 우연히 발견했든지 능동적으로 찾다가 발견했든지 간에, 두 비유는 모두,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진 것을 다 처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하늘나라는 상인이 찾는 좋은 진주와 같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늘나라가 상인과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과 좋은 진주는 예수님, 예수님의 복음,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구원의 길 등을 뜻합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신앙인의 기쁨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8-9).” <믿는 사람은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하느님 나라는 율법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엄숙하고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나라가 아니라,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고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행복하고 밝은 나라입니다. 사실,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엄숙하고 거룩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교회가 아니라, 누구든지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새 힘과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 쪽에 고장이 났거나, 아니면 생활 쪽에 고장이 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서둘러서 고장 난 부분을 고쳐야 합니다. 고장 난 것을 고치는 방법 가운데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3)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 외에는 다른 모든 일이 다 무의미하고,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버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버림’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7-9).”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이 기쁨을 주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인데, 버리는 일 자체도 기쁨이 됩니다. 만일에 버리면서도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버린다면, 그것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4) 바오로 사도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3-5)”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확실히 ‘밭에 숨겨진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일’과 같은데, 사실은 예수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대로 된 일입니다(에페 1,1). 그렇다면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또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동방 박사들은 ‘좋은 진주를 찾아서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즉 ‘온 세상을 다스리실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찾아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 아기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그런 상태로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낯선 땅을 향해서 먼 길을 기꺼이 여행했습니다.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9ㄴ-11).”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들을 모두 바쳐서 ‘예수님’이라는 가장 귀한 보물을 얻었습니다. <조선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들여온 학자들도 ‘좋은 진주’를 찾아서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진 것을 모두, 자신들의 목숨까지 전부 다 바쳤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