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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8-02 조회수136 추천수5 반대(0)

조선을 열었던 태조 이성계와 조선을 여는데 함께 했던 무학대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인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은 어찌 생긴 모습이 돼지 같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생긴 모습이 부처님 같습니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대사에게 외모가 돼지 같다고 놀렸는데, 스님은 어찌 나를 부처님 닮았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무학대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답니다.” 이 이야기는 무학대사의 재치가 드러납니다. 이 짧은 대화는 우리 마음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 내면의 반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당에 오신 교우 여러분은, 서로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룩한 부처의 눈을 가진 분들이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미사에 오신 분들이 모두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풍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는 길을 가다가 허름한 집을 보았습니다. 풍수에 능한 무학대사는 집의 주인에게 집의 풍수를 보니 앞으로 성공하여 큰 기와집을 지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는 앞으로도 이 집은 허름한 집으로 남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10년 후에 다시 찾아보니 태조 이성계의 말대로 집은 허름한 집으로 남았습니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임금님은 어찌 알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 집의 주인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가서 기와집을 지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풍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마저 보는 태조 이성계의 지혜가 드러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풍수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좋은 터에 살아도, 하늘을 향한 갈망이 없다면 사람은 땅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도, 하느님도, 은총도 결국 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집은 이 세상의 집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거룩하게 살아 영원한 생명의 집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덧붙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방향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마음을 드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고 구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라고 말합니다. 땅의 일, 곧 불륜, 욕정, 탐욕, 우상 숭배 같은 것에서 벗어나,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 유산 문제로 중재를 요청하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우리는 어떤 부를 쌓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만 빛나는 재물입니까? 아니면 하느님 앞에서 빛나는 마음입니까? 우리가 매일 먹고사는 이 땅의 집은 언젠가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집, 곧 하늘의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집은 풍수보다 더 깊은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 위에 지어지는 집입니다. 시편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천 년도 주님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돋아난 풀 같고, 저녁이면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이 소중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는 이 순간이 곧 영원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이 성체성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날마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음의 눈이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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