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희년의 영성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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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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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02 | 조회수71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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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2.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레위25,1.8-17 마태14,1-12
하느님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희년의 영성을 삽시다”
“밤으로 번져깔린 이어두움을 찬미의 노래로써 흩으옵나니 영원한 고향나라 복된은총을 푸짐히 우리모두 받게하소서"
아침성무일도시 찬미가가 은혜로웠습니다. 새벽 민생회복소비카드를 받고 기뻐하는 가난한 자매의 카톡메시지가 참 반가웠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희년의 영성이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민생회복소비카드가 나와서 은인들에게 조그만 선물해드리니 마음이 편해요. 하느님 부끄럽지도 않구요."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오래된 미래'와 같은 희년의 영성은 교회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가난이 보편화되는 시대, 이제 국가는 모든 국민을 품에 안은 가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제1독서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의 이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대로 하느님이 꿈꾸는 세상이고 예수님은 물론 모든 예언자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희년의 꿈이자 희년의 영성입니다. 희년에 대한 법이 실제로 이스라엘에 적용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참으로 ‘오래된 미래’처럼 영원히 살아야 할 희년의 영성입니다.
기후위기의 시대, 불평등이 깊어지는 갈등의 시대, 공동의 집인 지구는 물론 인류의 삶이 날로 위태로워지는 시대, 이 모두에 대한 답은 요즘 각광받는 인공지능(AI)이 아니라 ‘희년 영성의 실천’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 중심의 삶, 공존공생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희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희년(禧年;Jubilee)은 히브리어로 요벨인데 숫양의 뿔, 또는 나팔을 의미합니다. 흡사 요즘 피어나기 시작한 나팔과도 비슷한 재미있는 꽃이름, ‘천사의 나팔’(Angel;s Trumpet)’을 연상하면 됩니다. 즉 ‘나팔을 불어 해방의 자유와 기쁨을 선포하는 해’라 하여 희년입니다. 매 50년마다 돌아오는 온전한 ‘해방과 회복의 해’로서,
1.모든 노예가 자유를 얻는 ‘인간의 해방(human liberation)’을, 2.모든 빚을 탕감받기도 하며 모든 소유가 원주인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해방(economic liberation)’을, 3.모든 경작지는 휴경하게되는 생태적 해방(ecological liberation)이 이뤄지는 전방위적 총체적 해방과 자유를 뜻합니다. 정말 오늘날 절실히 필요로 하는 희년의 기쁨, 희년의 이상, 희년의 영성입니다.
정리 요약하면, 49년 동안 땅과 사람이 ‘번아웃(burnout)’ 지쳤다, “다 쉬어라!”, 돈, 사람, 땅은 “다 원위치시켜라!”는 회복과 자유를 뜻합니다. <시인과 촌장>에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 “세상 풍경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바로 희년의 풍경입니다. 바로 탄핵소추단 장순옥 변호사가 인용한 유명한 대목입니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희년의 이상이자 희망이요 영성인지요! 50년 마다 희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이런 해방의 기쁨을, 희년의 영성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제가 기상하자마자 바치는 만세칠창 역시 이런 희년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희년 영성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진리는, 우리 인생은 물론 세상 모두가 ‘내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요, 우리 모두 선물 인생을 살고 있다는 진리요, 그러니 모두가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묵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역시 이런 희년 영성의 완전한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비전 역시 희년 영성의 실현이었음을 봅니다. 공생애가 시작되기전 출사표와도 같은 예수님의 전삶이 요약된 다음 루카복음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50년마다 희년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생애 하루하루가 하늘 나라의 실현이자 희년의 실현이었던 것입니다. 희년의 해방과 기쁨이 예수님의 삶안에서 온전히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말씀은 그대로 오늘 미사중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내일이나 언젠가의 그날이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 부터 희년의 영성을, 하늘 나라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중심, 세상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의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흡사 지옥도를 보는 듯, 하느님 중심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유부단하고 의심많은 헤로데와 그의 부인 허영과 탐욕의 악녀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 모두가 세례자 요한을 죽게 한 무지에 눈먼 공범자들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는 반면교사 역할을 합니다. 희년 영성의 실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순교한 진리와 정의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못다 이룬 하늘나라의 꿈, 희년의 꿈은 예수님께 전달되고 오늘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고,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비전, 희년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영적 전의(戰意)를, 영적 결의(決意)를 더욱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자발적 기쁨과 성실(誠實)함으로 “희년의 영성”을,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어지신 그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시편67,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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