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십자가 지는 일을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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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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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08 | 조회수54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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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마태 16,24-28)”
1) 예수님께서 처음에 사도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루카 5,11). 사도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을 따른 사도들에게 당신의 통치권에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과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7-29)”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닌 신앙인이 사도들과 같은 수준의 ‘버림’을 실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수 있다는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진”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신앙인들이 일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때가 많은데, 크고 무겁든지 작고 가볍든지 간에, 신앙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들은 모두 십자가입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않고 참는 것도, 하기 싫은 일이라도 기꺼이 하는 것도 모두 다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폭염 경보가 내려져 있는 무더운 여름날에,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그 더위를 참고 견디면서 성당에 가는 것도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3)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현세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는, “예수님께서 구원과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현세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는 말씀은 아니고, 하느님 뜻에도 합당하지 않고, 공동선의 실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나쁜 권력’과 ‘사랑 없는 부유함’ 같은 것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인간 세상에도 선한 것들과 진실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는데, 학문과 예술 같은 것들처럼 하느님 뜻에 합당하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을 것들이 분명히 있고, 그것들이 현세적인 것들이라고 해도, 우리의 영혼 구원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인간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4)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산상설교에 있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는 말씀과 ‘뜻이 같은 말씀’입니다. 여기서 ‘행실’은 ‘삶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라는 말씀은, 표현만 보면, 사도들 가운데에 하나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당신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인데, 지금까지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고, 정확한 해석이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도 스테파노 순교자처럼 죽기 전에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 예수님’을 뵙고, 자신의 신앙이 옳았음을 확신하면서(사도 7,55-56)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과 신앙생활이 헛일이 아니었음을, 또 예수님의 말씀들과 가르침들이 생생한 현실이고 진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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