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그대는 혼인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 22,12) | |||
---|---|---|---|---|
이전글 | 양승국 신부님_깨끗한 마음과 흠 없는 양심,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 | |||
다음글 | 송영진 신부님_<하늘나라 잔치는 나를 위한 잔치이고 나의 잔치입니다.> | |||
작성자최원석
![]() ![]() |
작성일2025-08-21 | 조회수64 | 추천수4 |
반대(0)
![]() |
* 오늘의 말씀(8/21)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 독서 : 판관 11, 29-39ㄱ * 복음 : 마태 22, 1-14
1 예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오늘의 강론> 어제 복음인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자만과 보상에 대한 기대에 차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마태 20,16)라는 말씀이라면, 오늘 복음인 ‘혼인잔치의 비유’는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라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 역시 하늘나라에 대한 것으로,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마태 22,1)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말합니다.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마태 22,9)
이는 복음이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선한이나 악한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 누구든지 응하기만 하면 잔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구원이 인간적인 기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 부당성이나 죄의 심각성이 아니라, 초청을 받고도 응답하지 않은 불응답과 거부와 배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에 응답했다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으면 쫓겨나게 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잔치를 베풀 때 대문에다 예복을 미리 준비해두었고, 손님들은 ‘예복’을 입고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주인에 대한 예의의 표시였으며,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감은 주인을 모독하는 태도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응답과 함께 응답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는 이미 응답한 이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예복’을 갖추어야 할 일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거룩한 덕행의 ‘예복’을 입어야 할 일입니다. 또 행동하는 신앙, 실천하는 사랑, 꺾이지 않는 희망으로 그리스도의 갑옷을 ‘예복’으로 차려입어야 할 일입니다. 또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구원의 ‘예복’, 삶으로 실현된 복음의 ‘예복’을 입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는 먼 훗날의 나라가 아니며, 그 ‘초대’ 역시 먼 훗날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곧 지금 당장 응답하고 실천해야 하는 촉박하고 긴급한 요청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바로 지금, 우리의 일상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이 현장, 여기 이 공동체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현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그대는 혼인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 22,12)
주님! 잔치에 합당한 자 되게 하소서. 찬미와 감사의 거룩한 예복을 갖추게 하소서! 행동하는 신앙, 실천하는 사랑, 꺾이지 않는 희망으로 당신의 갑옷을 차려 입게 하소서! 당신 진리의 옷을 입고, 빛을 살게 하소서! 기쁨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수도회 벽돌 한장 계좌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좌는 농협 355-0045-9581-23 예금주: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원 이예요. 축복.평화 가득하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