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늘나라 잔치는 나를 위한 잔치이고 나의 잔치입니다.>
이전글 이영근 신부님_“그대는 혼인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 22,12)  
다음글 병자를 위한 기도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15 조회수29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2-14).”

1) ‘혼인 잔치의 비유’는 ‘구원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석하라는

초대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 초대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는 사실은 ‘나를 위한 잔치’입니다.

‘나’는 하늘나라 잔치의 손님이 아니라, 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이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2)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갈망하면서 기다렸으면서도, 메시아께서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시자 믿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잔치에 참석하겠다고 대답만 하고 참석해야 할 때가

되니까 참석하기를 거절한 것과 같습니다.

그 상황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적용하면, 세례를 받고서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3)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살인자들을 처벌한 일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자들에 대한

심판을 뜻합니다(마태 23,34-35).

임금이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을 모두 처벌한

것은 아니고, 살인자들만 처벌했습니다.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처벌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자체가 처벌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아서

참석하지 못하게 된 자들입니다.

4) 나중에 길거리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 즉 ‘모든 민족들’입니다.

비유에서는 유대인들이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해서

그 자리를 채우려고 이방인들을 부른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우리는 유대인들의 대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순서가 원래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9절의 ‘아무나 만나는 대로’ 라는 말은, 실제로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나’가 아닙니다.>

10절의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라는 말도

‘모든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악한 사람’을 ‘처음에는 악했지만 회개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선한 사람으로 행세하면서 부르심에

응답하는 척 하는 위선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악한 사람’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도,

회개하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세례를 받은 후에도 악한 생활을 청산하지

않으면, 세례성사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의 은총을

스스로 헛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5) ‘혼인 예복’은 충실하게 응답하는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초대를 받았으니 예복을 입을 틈이

없었지 않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그 한 사람만 안 입었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입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례성사는 응답의 시작일 뿐입니다.

끝까지(죽을 때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응답이

완성되고, 하늘나라 잔치에 참석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예복을 안 입어서 쫓겨난 사람처럼 됩니다.

혼인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을, 잔치에 참석할 생각은 없이

그냥 구경만 하려고 온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관광지가 아니고,

우리가 들어가서 살아야 할 ‘우리 집’입니다.

신앙생활은 구경하는 생활이 아니라,

목숨 걸고 전력을 다해서 살아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하늘나라의 잔치가 남의 잔치라면 구경만 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잔치는 ‘나를 위한 잔치’이고, ‘나의 잔치’이기

때문에 구경꾼으로 그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미사 전례를 예로 들면, 지나가다가 미사 전례를

구경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체를 받아먹지는 못합니다.

구경꾼에게 성체를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