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믿으니까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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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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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21 | 조회수38 | 추천수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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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4-40)”
1)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은, 이미 하느님을 믿고 있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뜻으로 한 질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예수님의 답변은, “믿고 있다면 사랑해야 한다.”이고,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믿어야 한다.”가 아니라......>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라는 말씀은, ‘황금률’에 관한 말씀에도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가장 큰 계명’과 ‘황금률’을 합해서 생각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면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웃의 사랑을 받고 싶으면 이웃을 사랑하여라.”가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데(야고 4,8), 이 말은, 하느님께서 어디 멀리 떨어져 계시다가 우리가 가까이 가면 가까이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라는 권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찾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찾으셨고, 우리가 당신을 알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가장 큰 계명’을 다음과 같이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먼저 당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너를 사랑하고 계시니, 너도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이 너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있으니, 너도 그렇게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주신 일,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내주셔서 우리의 목숨을 구원하신 일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또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2)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누구나 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고,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은, 부모 형제를 포함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든지 모르는 사람이든지 간에,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입니다. 그 ‘모든 사람’의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랑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이웃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요한 사도는 두 사랑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0-21).” 이웃의 사정에는 관심 갖지도 않고, 이웃 사랑 실천 없이 혼자서만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입니다.>
3) 믿음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도 하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사랑 실천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사랑 실천 없는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1코린 13,2).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쪽 세상에서 이웃 사랑 없이 자기 혼자서만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다가 죽어서 저쪽 세상에 가면, 그곳에서도 자기 혼자서만 살게 될 텐데, 그곳은 어떤 나라일까?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자기 혼자만 있는 곳이 과연 하느님 나라일까? 하느님 나라는(천국은) ‘사랑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지옥은 모든 것이 다 있다 하더라도 ‘사랑만’ 없는 곳입니다. 사랑이 있어야만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이쪽 세상에서 이웃 사랑 없이 혼자서만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하느님 나라를 등지고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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