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는 어느 나라 시민인가-최인호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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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서울대교구 | 작성일1999-07-03 | 조회수3,635 | 추천수3 | 반대(0) |
우리는 어느 나라 시민인가 최인호 베드로/작가
부처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서 수도하던 아시타라는 예언자가 카필라성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어린 부처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을 받은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이 아이가 도를 이루어 부처님이 되실 그때까지 살지 못할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나온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정결예식을 치르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을 때 시므온은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합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루가 2,35).
위대한 성자가 태어날 때에는 선지자가 등장하여 이들의 운명을 예언하는데, 실제로 부처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 되었으며, 예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받는 표적이 되어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들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짧은 인생, 그 가운데서도 아주 짧은 3년의 공생활이야말로 전인류의 거짓생활과 숨은 생각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어버린 거대한 해일이었으며 폭풍이었습니다. 그분은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하늘나라의 시민권'의 첫 주민등록증을 발급하셨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로마 시민권'이 최고 의 명예였습니다. 바오로도 자신을 결박하자 "로 마 시민을 재판도 하지 않고 매질하는 법이 어디 있소"(사도 22,25) 하고 항의합니다. 이에 파견대장은 "나는 많은 돈을 들여 로마 시민권을 얻었소" 하고 자랑하자 바오로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라며 기를 죽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던 로마의 주민등록증을 얻는 것은 출세와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심으로써 그 출생부터 로마 시민권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악마로부터 물질과 명예, 권력을 보장받는 로마 시민권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이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아직 로마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황제로 비유되는 이 세상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예수를 아직도 법정에 넘기고, 매질하며, 고발하고, 재판하여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아직도 우리에게 로마 시민권을 요구하고, 우리가 믿는 신앙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과연 두 개의 시민권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 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두 개의 시민권을 동시에 소유함으로써 "하느님과 재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소유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이중국적자(二重國籍者)가 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준엄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로마의 시민인가 아니면 하늘나라의 시민인가. 그것도 아니면 두 개의 시민권을 모두 가진 이중국적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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