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삶의 봉헌을 원하시는 주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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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8-31 | 조회수2,73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삶의 봉헌을 원하시는 주님> 골로 1,1-8; 루가 4,38-44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생이별을 해야하는 슬픔과 서운함은 굳이 설명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요? 벌써 10년쯤 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 모든 국민들의 관심이 한 곳으로 쏠려 있었던 때를
기억하실 수 있을 겁니다. 더듬더듬 헤어질 당시의 기억을 애써 떠올리며 만나게
된 혈육 친척의 경험들이 하나 둘씩 일치하기 시작할 때 [저 사람들도 이번에는
제발 자기 혈육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샌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하나를 찾으면 부둥켜안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
고 뺨을 비비고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그 때
를 기억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들과 본의 아닌 이유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슬픔은 평생의 한이 될 만큼 커다란 것인가 봅니다. 때문에 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가까운 외국 여행비용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금
강산 관광 길에 나서고 또 그곳에서 조상을 기억하며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도 지내게 되는 것이겠죠.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활동을 하시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감사의 마
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온갖 병자](루가 4,40)로 표현되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모두 고쳐 주심으로써](40절) 그들은 예수님을 은인으로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앉은뱅이였던 사람, 눈이 멀어서 보이지 않던 사람, 귀
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조차 없었던 사람, 나병에 걸려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사람, 많은 죄를 짓고 사형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 죄를 지었다는 마음의
중압감 때문에 무거운 죄의식에 눌려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입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대한 소중한 마음이 생겼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떠나가실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이번에는 [자기들
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들게](42절) 됩니다. 생명의 은인을 오래도록 곁에서
모실 수 있는 영광과 행복을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43절) 공적인 임무 앞에서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했던 이산
가족의 아픔과는 경우가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점에 있
어서는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묵상해 볼 수 있는 소재는 이런 것입니다. 우선 우리들 안에 예수
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이 의사 결정을 하게될 때 [우선 순위]를 생각하게 되듯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교차할 때는 반드시 일의 순서와 경중을 따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는, 일의 순서와 경중이 정해지고 나면 아무리 인간적이고, 아름답고,
진한 사랑의 스토리라 하더라도 [사사로운 감정은 버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사람인지라] 세 번째의 요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도 일에만 급급하지 않으시고 항상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42절) 기도하셨듯이,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꾸준히 그 삶을 지켜나가셨듯이, 우리들
도 예수님을 닮으려는 노력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들 삶의 봉헌
을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채워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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