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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가위](추석 명절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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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창열 쪽지 캡슐 작성일1999-09-23 조회수3,132 추천수2 반대(0) 신고

한가위(추석 명절) 미사

(요엘 2,22-24.26ㄱ: 묵시 14,13-16 : 루가 12,5-21)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다들 추석 명절을 즐겁게 지내고 계시겠지요?

 

 오늘은 우리 나라 고유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추석의 역사적인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의 3대 유리왕은 공주들을 시켜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음력 7월 보름날부터 한 달 동안 길쌈(베짜기) 시합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인 8월 한가위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하고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로 즐겼다고 합니다(嘉俳). 한편, 조정에서는 밝은 보름달을 향하여 절을 하며 달을 숭배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그 의식이 끝난 후 임금은 풍악을 올리고 관원들로 하여금 활쏘기 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삼베를 상으로 주었습니다. 이 밖에도 8월 보름날은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부터 [중추절, 한가위 또는 가위]라 불리는 추석은 우리 나라 고유의 명절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 형제들이 살고 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로 혼잡을 이루어, 마치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추석 연휴에 고향을 찾아 친지들을 방문하고 성묘를 하는 일 등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애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새로 추수한 햅쌀과 햇과일 등을 차려놓고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는 근본적인 뜻은 선조들로부터 전해 받은 나의 생명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추석의 동기라 할 수 있는 길쌈 시합도 없어지고 신라도 사라졌지만,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이 천여 년에 걸쳐 뿌리를 내려 온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추석은 이제 단순한 명절의 의미를 넘어서서 더욱 깊은 영성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수확과 결실의 기쁨을 나누는 이 날에, 우리는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자연을 섭리하시며 인간 생명을 주재하시는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한가위를 맞아 우리 인간에게 땅을 경작하도록 명하시고(창세 2,15) 땅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도록 축복하신(창세 1,18)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신 조상들의 넋을 기리며 그분들이 생전에 남겨주셨던 은덕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분들의 영원한 삶을 위해 특별히 기도 드립니다. 이런 점에서, 추석은 바로 하느님의 축일이요 부모님의 날, 선조들의 날이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는 [수확과 추수에 대한 신앙인들의 올바른 자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제 1 독서로 봉독한 요엘서의 말씀은 바빌론 유배 생활 이후 성전을 재건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신뢰하는 우리는 추석인 오늘, 이 말씀을 더욱 깊이 마음에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제 2 독서인 묵시록 14장의 말씀은 노력하고 애쓴 사람들이 받을 상급, 곧 하느님 안에서 누릴 축복을 예고합니다. 특히 추수를 통해 종말, 즉 최후의 심판의 의미를 깨닫도록 강조하고 있다. 자연은 정직하며, 노력한 만큼 수확과 결실을 가져다줍니다. [하느님의 밭이며 씨앗]인 우리들은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루가 복음은 현실의 기쁨과 재물의 기쁨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 영원한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도록 하는 비유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이가 재산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지 않듯이, 소중한 것은 재물이나 재산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 줍니다.

 

 한가위는 본래 [한가운데]라는 뜻이라 합니다. 계절의 한가운데, 시간의 한가운데, 욕망과 지각의 한가운데가 바로 한가위가 갖는 의미인 것입니다. ’더 많이, 더 풍요롭게’... 무제한의 욕망을 갖는 것이 보통의 인간들이 갖는 본성이지만, ’더도 덜도 말고 지나치지도 말고 모자라지도 말고’의 철학과 ’줏대 있는 가치관’이 절실한 때에 추석을 맞고 있는 만큼, 오늘 명절이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축제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옛부터 진정한 축제는 이웃과의 나눔을 늘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난한 이웃과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그들과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함께 나누고, 특히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넓은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 지혜와 학문, 좋은 의견 등, 이 모든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눌 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름답고 둥근 보름달과 같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한가위 미사를, 대대손손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곡백과로 풍요롭게 해 주신 하느님과 조상들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봉헌하면서, 우리의 기도와 희생으로 마지막 날 이루어질 우리 자신의 추수도 잘 준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곡백과가 땅에서 났으니,

  우리 주 하느님께서 복을 주심이로다.

  하느님,

  저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천하 만방이 당신을 두리게 하소서."(시 6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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