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린이 미사에서 주일학교 교사들이
만든 강론이 너무 좋아 제 묵상을 써보고 싶습니다.
형제가 있었습니다. 쵸콜렛이 한상자
생겼는데, 어머니는 할머니께서 오시면
먹자고 하셨습니다. 동생은 참지 못하고
상자를 뒤져서 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형은 참고 기다렸습니다.
할머니가 오시자 엄마는 쵸콜렛 상자를 열었습니다.
형은 자신은 먹지 않았지만 동생이 먹었다고 고자질
하였습니다. 엄마는 고자질을 한다고 형을
야단치셨습니다. 쵸콜렛도 못먹고, 야단까지 맞은
형은 수녀님께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쵸콜렛을 먹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엄마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께도 그러하시겠지요. 사순절이라고, 극기와 약속을
여러가지 해놓고, 지키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공을 세우기에 급급했던 저를 생각합니다.
이것하나 못하냐고 제 자신을 단죄하고 자학하는
어리석은 제모습을 느꼈습니다. 이만큼 했으니
인정해 주시리라는 어리석은 공로들...
중요한 것은 결심을 지키지 못하는 제 나약함이나
의지박약이 아니고, 그래도 누구에게나 햇볕을 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는 일인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제잘못을 합리화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마음 속에 사랑이 있는가? 그것이 남에 대한
배려와 성의로 이어지는가? 그것은 극기와 단식
금주 같은 결심의 근본이 되는 중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 졌습니다.
예수님을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죄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나는 죄안짓고
착한 일만 해야 한다는 결심은 어리석은 위선이
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심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위선으로 이어지지 말아야 하겠지요. 초라한,
가진것 없는 이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우러
나오는 사랑, 아마 예수님은 그런 사랑을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죽은자의 일과 같은 죄짓고 반복되는
소극적인 회개 보다는 적극적인 사랑을
마음에 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눌한 이야기 이지만 제게는 중요한 발견
이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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