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다. (부활 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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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5-06 | 조회수2,11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00, 5, 6 부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요한 6,16-21 (물 위를 걸으시다.)
그 날 저녁 때 예수의 제자들은 호숫가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저편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저어 갔다. 예수께서는 어둠이 이미 짙어졌는데도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다.
그런데 그들이 배를 저어 십여 리쯤 갔을 때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배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에 모셔 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배는 어느 새 그들의 목적지에 가 닿았다.
<묵상>
어린 시절 혼자서 집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낮이라면 덜 하겠지만, 늦은 밤이라면 괜히 겁이 납니다. 문은 잠겨 있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데도, 갑자기 강도가 뛰어 들어와 나를 헤치지는 않을까 두려운 상상에 휩쌓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때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누굴까?'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조심스럽게 '누구세요?'라고 묻습니다. 그 때 '나다.'라는 소리가 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의 긴장이 한 순간에 무너지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심정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거친 파도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제자들은 이 파도를 발판삼아 걸어오는 낯선 사람을 보면서 더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바로 그 때, 일시에 두려움을 몰아내는 구원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예수님의 말씀이 두 가지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너희가 본 사람은 낯선 사람이나 허깨비가 아니라, 너희와 항상 함께 하는 바로 나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 없다."라는 것과 "이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더 이상 거센 파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제 용기를 얻어 두려움에서 벗어난 제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생각에 위태롭게 물 위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안전하게 배 안으로 모셔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배는 이미 풍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뭍에 닿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자들이 예수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밖에는 말이지요.
예수님과 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말했던 제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주님의 품 안에서 평화와 용기를 얻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이 제가 주님과 만나면서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라고 제게 말씀하시지만, 과연 지금까지 얼마나 이 음성에 귀를 기울여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수없이 많은 순간 인간적인 능력이나 의지에 기대면서 실망하고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내 옆에 계시면서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마저 듣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이 불안과 조바심과 실망은 제 마음 속에 격정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또 한번 용기와 희망을 얻고 한 걸음 나아갑니다. 그리고 항상은 아니더라도 가끔씩이나마 '나다'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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