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도는 듣는 것(연중 11주 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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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6-21 | 조회수3,380 | 추천수22 | 반대(0) 신고 |
2000, 6, 22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6,7-15 (주님의 기도)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릉 요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묵상>
지난 번 사제 연례 피정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시간은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던 성체조배였습니다. 피정을 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에 치중하자는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성체조배 시간이 그러한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말을 합니다. 가뜩이나 말하기를 좋아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말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 좋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다보면 어쩔 수없이 듣는 것에 소홀하게 됩니다. 귀로는 무엇인가를 들으면서도 머리로는 끊임없이 무슨 말을 이어서 할지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에 참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비단 인간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즉 기도하면서도 이러한 경우들이 많이 있지요.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들으셔야만 합니다."라는 식으로 이런 저런 기도들을 하곤 합니다. 하느님께 드릴 저의 이야기가 끝나면 마치 기도가 다 끝난 것처럼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 이야기를 들어야지. 왜 일어나는 거니?"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기도는 자기 넋두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해서 허공에 대고 떠드는 소리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맡기고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말(입으로 나오는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전해지는 무언의 말까지)에 치중하다 보면 소리만 요란한 꽹가리처럼 되기 쉽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지요.
지난 피정 동안 나름대로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무엇인가 계속해서 떠들어대지 않으면(마음속으로 말이죠) 제대로 기도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졸리거나 분심이 들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성체조배 시간만큼은 최대한 저의 말을 자제하려고 했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제는 결코 그가 하는 일 때문에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할 때는 사제인데,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다르게 보여지는 이중적인 모습은 참된 사제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사제이기 때문에 사제의 일을 하는 것이지, 사제의 일을 하기 때문에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물론 이는 사제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일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일에 쫓겨 생활해오면서 뒤로 미뤄놓고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지금 제 처지에서 가장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허덕이던 저를 주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말을 들으렴. 그러면 너의 힘겨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그러기에 이제부터는 주님께 말씀을 드리기 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물론 한 순간에 지금까지 타성에 젖어 해왔던 기도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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