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된 화해는 이렇게...(연중 19주 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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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8-16 | 조회수2,737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0, 8, 16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18,15-20 (형제가 죄를 지으면, 내 이름으로 모인 곳)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여라.' 한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묵상>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갑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잘못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상처란 상처는 가급적이면 빨리 아물수록 좋은 것입니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상처가 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만이 아니라 성처를 입힌 사람도 함께 아파하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씩 옆에 있는 친한 사람의 잘못으로 걸려 넘어집니다. 그 친구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그 친구와 함께 걸어가지 못하고 걸려 넘어져 비틀거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만 넘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못한 그 친구도 걸려 넘어져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후회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라고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 친구 역시 우리와 예전처럼 편안히 함께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넘어져 있고, 친구도 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상처를 입힌 사람, 잘못한 사람보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짓눌려 혼자 힘으로는 일어서기가 힘듭니다. 아마도 누구나 한 두번쯤은 자신의 잘못을 먼저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상처를 입고 피해를 보았다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잘못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친구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친구를 책망하거나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를 일으켜 세워 예전처럼 사이좋게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 다가 가야합니다.
그렇기에 친구의 잘못을 모든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외쳐댈 것이 아니라, 친구를 짓누르고 있는 잘못, 죄라는 바위를 들어 치워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친구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어 새롭게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고, 참된 화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참된 사귐의 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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