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은 이들 앞에 선 위선자(연중 21주 수)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늘 준비하고 있어라 | |||
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8-30 | 조회수2,19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00, 8, 30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마태 23,27-32 (위선자에 대한 책망)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을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이와 갚이 너희도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떠들어 댄다. 이것은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
<묵상>
서울 수유리에 4.19 국립묘지가 있고, 광주 망월동에 5.18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민족의 아픔과 젊음과 희망이 녹아 있는 곳입니다. 대학생 시절 해마다 찾았던 4.19 묘지는, 신학생 시절 처음 찾았던 망월동 묘지는 죽음을 뛰어넘은 참 희망과 부활의 못자리였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나되어 사랑과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나누는 만남의 자리였습니다.
어느 날, 철모르고 날뛰던 청년학생들이 서럽게 묻혀있던 4,19 묘지가, 온 민족을 절대절명의 위기로 내몰았던 폭도들이 잠들어 있던 망월동 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고 이제 모든 이들이 편안하게 찾아 갈 수 있는 공원이 되었습니다.
좋습니다. 얼마나 바랬던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애국 민주 선열들이 고이 눈을 감으시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억눌한 누명을 모두 벗어버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소중한 한 목숨 바치신 그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으셨으니까 모든 것이 잘 된 것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지요.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음을, 이것으로 끝날 수 없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되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죽인 자들은 기묘한 변신으로 자신의 죄과를 스스로 벗어던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애써 침묵을 지켜온 이들이 이제 잘 단장된 묘지 앞에 국화 한송이, 소주 한 잔 올리는 것으로 자신의 침묵을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힘없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 끌려가듯 끌려가고, 서슬퍼런 국가보안법의 위력 앞에서 자유와 진리와 정의는 빛을 잃기 때문입니다. 죄없이 죽은 이들의 죽음을 앞당겼던 처절한 외침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거만, 그 소리 빼앗아 죽은 이들을 거세시키고 잘꾸며놓은 무덤 앞에서 축배를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 말씀이, 그리고 묵상이 더욱 쓰라리고 가슴 미어지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니야, 나는 책임없어.'라고 말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야속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시금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사제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되새길 수 있었기에 기쁨과 희망으로 이 시간을 맞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결코 저주와 단죄의 말씀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참 삶으로 이끄시는 말씀이기에 오늘 또다시 힘을 얻고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말이나 가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성스러운 제단에, 그리고 민주와 해방의 제단, 통일의 제단에 온 삶을 봉헌하는 것만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참된 삶임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