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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가정은 성가정인가?(27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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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08 조회수2,402 추천수13 반대(0) 신고

작년에 친구 돌 잔치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였기에 정말로 반가웠지요. 특히 그 친구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저에게 너무나 잘해주셨기 때문이었거든요. 부모님도 저를 보시고서 너무나도 좋아하시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명연아, 너도 이제는 결혼했지?"

 

저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요, 결혼식 주례는 많이 한답니다."

 

요즘에 결혼식을 하는 처녀 총각들이 참으로 많지요. 우리 본당에서도 거의 매주 혼배 미사가 있답니다. 지금 주임신부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제가 거의 모든 혼배 미사 주례를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정말로 보기 좋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그것은 신랑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유행 가사의 말처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남이 보아도 이 둘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결혼? 결혼할 때나 좋지. 조금 지나서 애라도 생겨봐. 서로 사랑해서 사는 줄 알아, 그냥 마지 못해서 사는 것이지."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정말로 좋은 선택을 하셨어요.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를 아셔야해요."

 

"결혼은 해도 손해고, 안해도 손해다."

 

"결혼하는 날부터 지옥이다."

 

정말로 그런가요?

 

연애할 때는 단 한시라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쉬워하면서, 결혼 후에는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변할까요?

 

몇 달 전, 성당 마당을 산책하면서 잔디밭을 보게 되었습니다. 파란 잔디밭이 너무나도 좋아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잔디밭에 누워서 한 숨 자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잔디밭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눕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잔디밭에 개똥이 너무나 많아서, 어디 앉을 자리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런 경우가 있지요.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서 아주 내 맘에 꼭 드는 상품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 상품은 나에게 정말로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해서 막상 보면, 광고만큼 훌륭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요.

 

이처럼 멀리서 바라볼 때와 가까이서 바라볼 때의 차이는 너무나도 큽니다. 아마 사람의 경우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즉, 연애를 할 때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외모나 인품에 쉽게 마음이 끌리지요. 하지만 막상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때는 그 상대방에 대한 결점이 하나 둘씩 보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속았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즉, 처음에 거리를 두고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속인 것이 아니지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후회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아홉 쌍이 혼인 할 때 한 쌍 정도만 이혼하는 비율에 비해서, 요즘에는 부부 세 쌍이 혼인 할 때 한 쌍은 이혼한다고 하지요. 이런 세태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으면 남편은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낼 수 있다는 입장을 펼쳤습니다.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이냐에 관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간음, 풍기문란, 계명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특이한 것은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 음식을 태우는 것 역시 수치스러운 일로 보고서 아내를 소박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쉽게 이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버릴 수 있을까를 따지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라는 의미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당시는 남자만이 여자를 소박할 수 있었는데 반해서, 이제는 남자가 여자에게 소박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이런 갈라섬은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미국은 이혼율이 우리나라보다도 더 대단하다고 하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어떤 부부가 75번째의 결혼 기념일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흔치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전국의 신문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었지요. 그것은 그들 결혼 생활의 성공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점이었지요. 이 질문을 받은 노부부는 이렇게 답변을 했답니다.

 

"우리는 소동을 피우거나 싸운 적이 없어요. 만일 마음이 상했으면 그저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또 무슨 말을 해야겠으면,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 하지요.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이 상처를 줄 것 같으면 침묵하세요. 당신의 배우자가 퉁명스러우면 인내하세요. 소문이 떠돌면 들으려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생각하고 같이 아파하세요. 불행이 닥쳐 오면 용기있게 행동하십시오."

 

바로 이 분들의 지혜를 우리 모두 가슴 속에 담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없지요. 단 한가지 만의 결점이 아니라, 수십 아니 수백 가지의 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완벽함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점은 부부만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의 가족 안에서, 그리고 나의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도 이 점을 기억할 때, 우리는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가정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지요. 성가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겸손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단점을 바라보기 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고, 불신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가정도 성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얼마나 우리 가정이 성가정을 이루는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나는 얼마나 나의 가족을 믿고 있는가?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정을 사랑하고 있는가? 심지어는 단점이나 결점까지도 사랑하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 가정은 성가정일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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