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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사람(마리아 방문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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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1-05-31 조회수2,110 추천수16 반대(0) 신고

 

 

2001, 5, 3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음 묵상

 

루가 1,39-56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마리아의 노래)

 

그 무렵에 마리아는 일어나 유다 산골 동네로 서둘러 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아기가 그의 태내에서 뛰놀았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 축복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열매 또한 축복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이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 닿자 아기가 내 태내에서 흥겨워 뛰놀았습니다. 복되도다. 믿으신 분! 주께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은 이루어지리다."

그러자 마리아는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리며

       내 영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을 두고 흥겨웠나니,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이로다.

       보라,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능하신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기 때문이로다.

       당신 이름 거룩하도다.

       당신 자비는 세세 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리로다.

       당신 팔로 힘을 쓰시어

       그 심사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권세있는 자들은 권좌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들은 들어올리셨도다.

       배고픈 이들은 좋은 것을 채우시고

       부유한 자들은 빈손으로 떠나보내셨도다.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도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자비가 미치리로다)."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 가량 머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묵상>

 

제가 살고 있는 미아 3동 성당은 서울 시내이 어느 본당에서도 찾기 어려운 넓은 마당과 그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어울려 있는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지난 토요일 이 마당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가졌습니다. 성모상과 성모상을 장식한 꽃꽃이, 그리고 신자분들이 봉헌한 초가 한데 어울어져 캄캄한 밤을 환히 밝혔던 너무나도 아름다운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날 성모의 밤 행사를 모두 마치고, 차마 그 날 밤 성모상과 그 둘레를 장식했던 아름다운 꽃과 촛불들을 정리하기가 너무 아쉽고, 성모의 밤에 함께 하지 못했던 형제 자매님들께도 곱게 장식한 성모상 앞에서 잠깐이라도 기도할 시간을 드리고자 다음 날 주일 저녁 미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청년들과 함께 성당 마당에서 지새우며 아름답게 소중한 여운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청년들과 한데 어울려 한 잔 술로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살믜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금 멀리 떨어져 혼자 계시던 한 낯선 형제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신부님이 계신가요?"

"예. 제가 이 본당 보좌신부인데요."

"괜찮으시다면 잠깐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네, 그럼 잠깐 뵙죠."

 

저는 청년들과 잠시 떨어져 그 형제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부산 교구 신자이신 형제님의 기막힌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외아들을 둔 중년의 가장이신 이 형제님은 사업의 실패로 더이상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미아3동 성당에 다니는 옛 친구를 찾아 멀리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하룻밤 머물 곳조차 마땅차 않고 그날 밤 집으로 내려갈 형편도 되지 않아 성모의 밤 행사를 마치고 성당 마당 한켠에서 외롭게 기도하며 밤을 새기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구체적인 내용은 제 마음 속에 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그 형제님께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믿음과 희망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주일 미사 때문에 먼저 사제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제게 형제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미사 때 다시 뵙고 부산을 떠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미사 때 형제님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밤샘을 하던 본당 청년에게 과자 상자를 찢어 눈물 겹게 써 내려간 쪽지 한 장을 전하고선 당신의 길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쪽지를 읽으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 옆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님께서 제게 전해 주신 쪽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신부님 전.

 

무어라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지...

 

어두운 밤하늘에 한줄기 불빛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참혹한 절망 속에 피어난 환희와도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두서 없는 저의 한탄과 하소연을 진실로 감싸주시고 사랑의 손길로 이끌어 주시어 너무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신부님의 말씀 한 마디가 저에게는 절실한 희망이 디고, 신부님의 따스한 배려가 저의 처절한 현실에 믿음과 소망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 드립니다. 편협과 불신 속에서도 함께 하는 믿음과 사랑을 베풀어주심을 기억하며, 어디에 어느 곳에 있더라도 기도하며 희망 속에 살겠습니다.

 

아침에 뵙기에 너무도 송구스럽게 죄송하여 짧은 글을 남기며 떠납니다. 신부님의 영육 안에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길 빌면서...

 

제가 그 형제님께 특별히 무엇을 해드린 것이 없었기에, 이 쪽지를 받고서 오히려 제가 더욱 송구스럽고, 더욱 큰 기쁨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분명 이 형제님은 제게 있어서 그 날 그 시간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찾아와 사랑의 불을 놓으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그 날 그 시간 그 형제님께 저 역시 힘겨운 이와 함께 하신 예수님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받아들여졌던 그 날 그 시간은 분명 누군가에게 다가가 함께 있음만으로도 각박한 세상을 녹이고, 절망의 세상에 희망을 심으며, 메마른 땅을 사랑으로 적실 수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가 되실 마리아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멀리 유다 산골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참 기쁨과 희망을 나누신 것을 기념하는 오늘, 특별히 지난 토요일 한 낯선 형제님과의 짧았던 만남을 기억하며, 슬픔과 절망에 허덕이는 이웃들에게 몸소 다가가는 주님의 사제로 살아가자는 다짐을 새롭게 해 봅니다.

 

(이 묵상글이 혹시 그 형제님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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