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 비록 음산한 골짜기를..."(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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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 작성일2001-07-12 | 조회수1,920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께 그리스도님의 평화를 빕니다!"
[참행복 2]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오 5, 4
"나 비록 음산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시편 23, 4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죽음의 골짜기로..... ’죽음의 골짜기’란 ’새롭고 밝은 빛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하나밖에 없는 좁은 통로’입니다. 이곳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이곳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기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깃들이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밀알 하나"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땅 속! "연어"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수천의 삶을 살고자 자기가 태어난 원천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계곡!
"사람"이 땅의 것을 욕심내고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죽게 되어 짐승의 옷을 입고 짐승처럼 죽게 되었기에 온 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죽음(짐승)의 흔적’을 없애고 "참사람"이 되어 아버지 집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이란 나를 살려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마련하시고 친히 걸어가신 "사랑의 길"입니다. 이 길은 결코 고통의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이 길을 걸어가다보면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마다 한없는 주님의 사랑이 듬뿍 배어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로 나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라고 희망에 찬 말씀을 하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 : "슬퍼하는 사람"은 빛자체이신 하느님과 비겨 자기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맞지 않는 자신의 죄(교만과 불순명)를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느님과 맞지 않는 자신의 죄를 없애기 위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속죄의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따라 간다"는 것은 ’저 생명의 샘, 아니면 영혼의 중심(가장 안)에 계시는 저 빛나는 해님’(예수의 데레사 성녀, 영혼의 성)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 안의 하늘스런 궁성’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궁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궁성 밖의 모든 사정으로부터 떠나야만 합니다. 모든 사물이나 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한 욕심과 집착까지도 없애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욕심과 집착’을 온전히 버리지 않는다면 다시 궁성 밖으로 되돌아 나올 수 있기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는 이유를 다시 말하자면 우리 영혼의 중심에 계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영이시기에 우리가 그분께로 나아가려면 육적이고 물질적인 다른 모든 것에서 벗어나 혈육의 어머니 뱃속에 생길 때 만들어진 ’나의 마음’, 즉 ’하느님을 닮은 영혼’안으로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달리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심때문에 땅에 온 몸을 대고 있는 뱀의 유혹에 빠져 두 손과 몸을 땅에 대므로 아버지로부터 떠나 짐승처럼 죽게 되어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슬퍼하여 오랫동안 두 손을 땅에 대고 있으므로 해서 굳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겪는 고통은 바로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 생긴 것이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인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땅에서 손을 떼고 땅을 향해 굽혀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해야만 하며 거기서 오는 고통 또한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2000년 전에 온 몸을 땅에 대어 짐승처럼 죽게 된 사람을 살려주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시어 그 피로 사람들의 죄악을 씻어주시어 살아나게 해주시고 당신의 살을 먹이로 내어주시어 영원히 살게 해주시는 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또 세상 끝날까지 그 일을 계속하시고자 하십니다.
주님께서 죽어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피를 넣어주어(세례성사) 살아나게 해주시는데, 당신의 살을 먹이로 내어주시어(성체성사) 영원히 살게 하시는데, 왜 굳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만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서 계속 십자가를 지시고 그 위에서 피를 흘리시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고통을 아프다고 슬프다고 말하며 나를 위해 고통당해주셔서 고맙다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도 ’자신의 밖(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안에서 만나는 고통’을 "십자가의 고통"이라고 말하며 "십자가를 지고 간다!" 고 "나도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는 착한데 주위에서 자기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의 십자가이고 그들을 받아주고 참아주는 것이 자기의 십자가를 잘 지는 것이고, 자기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아! 나는 착한데 왜 내게 이런 큰 십자가가 따를까?" 하고....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이란 나 자신이 너무나도 교만하여 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주인으로 바로 알아 섬기지 않고 그분의 뜻을 거스려 짐승처럼 죽게되어 빛이신 아버지와 맞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스스로 그 죄악을 없애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자 자신의 존재를 작게 만들고자 하지만 그것을 잘 할 수 없는데서 오는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더러움을 깨닫고 그길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참으로 고마운 은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쌓아올린 두꺼운 벽을 허물어주는 사람들이요, 그들은 너무나 커져버렸기에 "작고 작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작게 만들어주는 이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너무도 많이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을 다 안배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내가 쌓아올린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얼마나 견고한지, 어떻게 해야 허물어 뜨릴 수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시어 그것을 돕기 위해 내 주위에 그 벽을 허무는데 필요한 사람들을 요소 요소 박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 성소로 정하여 나를 거기에 있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세례성사를 통하여 당신의 피로 나를 온전하신 아버지와 같이 깨끗하게 해주시는데 그 전에 미리 짐승스런 모든 요소들을 빼버렸다면 내게 "십자가의 고통"도 필요가 없고, "십자가의 길"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 고통을 다 겪고 그 길을 다 걸은 후에 다만 우리는 성모 마리아님처럼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소서!"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일 분이니까요.....
욕심!, 세상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 내가 주인이 되려는 욕심! 그것을 없애는 길!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하느님께로 가고 오르는 길은 으례 욕을 끊고 그치게 하는 조심성이라야 하고, 또 이를 빨리 서두를수록 그만치 이르게 도달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제아무리 덕을 많이 닦는다 할지라도, 욕이 살아있는 한 도달이란 있을 수 없다. 완덕을 위한 덕이 없기 때문이니, 완덕이란 영혼이 모든 욕을 끊고 벗고 비우는데 있는 것이다." (가르멜산길 제1권 5장 6항) 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아주 작은 의지적 욕(부러 마음으로 일으키는 욕)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완덕에 나아가기는 그르다고 했습니다.
"여기 한 마리의 새가 묶여 있다고 하자. 가늘거나 굵거나 간에 묶은 줄이 끊어지지 않아 새가 날지 못한다면, 줄이 가늘다 해도 굵은 줄에 묶인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가르멜산길 제1권 제11장 4항)
나를 살려 주시기 위해 지금도 하늘과 땅, 온 세상에 걸쳐있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당신의 몸을 타고 올라오라고 주님께서 나를 애타게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한 명도 예외없이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자기가 기대하지 않았던 그 순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렇게 죽음은 자신에게 다가옵니다. 그 때! 두려움 없이 떳떳하고 기쁘게 두 팔을 벌리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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