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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날 때 마다 새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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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기쁘게 헤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연중 22주 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1-08-16 조회수1,804 추천수11 반대(0) 신고

오랜 세월 흑백 인종간의 갈등을 겪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위원회를 하나 구성하였는데, 이 위원회가 "진실과 화해 위원회"였습니다.

 

이 위원회는 백인들이 흑인들을 향해 저질렀던 각종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실시했었는데,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범죄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고 잘못을 인정했을 때에는 그 죄가 얼마나 크든 상관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흑인들에게 가해졌었던 그 숱한 가혹 행위들을 생각했을 때, 참으로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위원회는 "흑백간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이같이 아름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용서란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용서란 "저지른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관대하게 처리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가 하면 "놓아준다"란 의미도 됩니다.

 

우리가 "용서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놓아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에 끊임없이 집착하고, 또 상대방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에 지나치게 연연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참된 용서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인생 여정 안에 베푸셨던 그 숱한 용서와 자비를 기억한다면 이웃들을 향한 나의 일상적인 용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솔직히 누가 누구를 용서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이든지 용서할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을 처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용서"란 무엇보다도 "한 인간이 지닌 한계와 약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수용"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용서를 살펴보면 한 인간의 죄악에 대한 단순한 용서를 뛰어넘어 한 인간의 과거를 완전히 잊어주시며, 한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켜주시며, 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회복시켜주시는 총체적 용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용서한다는 것은 이웃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을 살리고 해방시키는 가장 아름답고도 첫째가는 그리스도교적 덕행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이웃과 다시 한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기존에 우리가 지녔었던 이웃에 대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다시 한번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가 다시 한번 이웃들에게 기회를 주는 하루, 이웃들이 지니고 있는 변화에로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아침 주님 생각

 

1.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수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의 자기 해방을 대가로 지불해주기 때문입니다.

 

2. 용서하는 마음에서만 걸림돌을 치워버리는 힘이 생깁니다.

 

3. 사람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고 그리는 기다림과 자기 정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4.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입니다(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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