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리뱀의 전설, 믿어지십니까? | |||
---|---|---|---|---|
이전글 | 영광, 기쁨, 환희의 십자가 | |||
다음글 | 겸손이 문제다! | |||
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09-14 | 조회수1,79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말씀(민수 21,4-9; 요한 3,13-17)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리로 만든 뱀을 기둥에 달아놓고 쳐다보게 했더니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믿어지십니까? ’구리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알아들을 이야기이지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구리뱀이 생명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인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서를 반복해서 읽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과 태도의 변화를 나타내는 말들이 눈에 뜨였습니다.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 ’어쩌자고’, ’죽일 작정입니까’, ’없고...없습니다’, ’진저리가 납니다’의 불평불만으로 일관되어 있다가 불뱀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려 죽자, 백성들의 태도와 말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제 ’간청하였다’, ’잘못이었다’,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변한 것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공손하게 변해서 주님이 응징을 구원으로 바꾸었구나. 그러니까 주님께 벌을 받지 않으려면 공손해야 해!’.....??? 주님이 정말 그런 분일까요?
혹시 이런 이야기는 아닐까요? 우리의 인생을 광야를 지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할 때, 그 안에는 무수한 시련들이 상존(常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하나가 우리의 여행을 가로막고 위험에 빠뜨리려하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는 참고 견딜만 하다가도 어느 때는 너무나 버거워서 정말 참기가 힘들어질 때가 있죠.
참을 수 없는 시련 앞에서는 이제껏 한번도 따져보지 않았던 자신 안에 감추어진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초라함과 무능력함, 나약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양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사태를 회피하거나, 자책하다못해 절망하거나 등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하느님과 모세(지도자, 또는 동반자)에게 대들고 항의하고 불평을 터뜨리는 것으로 난국을 타개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바로 이런 방식을 택했을 때에 그들이 처한 고통과 시련은 해결되기는 커녕 뜨거운 ’불뱀’이 되어 그들을 헤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많은 백성이 죽어갈 즈음에야 그들은 하느님(모세)에게 와서 간청합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위에 말한 것처럼 옳지 않은 방법들을 써보다가 가정의, 사회의, 공동체의 문제로 확산되어 더 이상 도리가 없을 때에야 마지막으로 주님을 찾습니다. 이때, 많은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왔다는 것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광야(인생)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이렇듯 동반자들과 일치하려는 연대감을 가져야 살 수 있음도 깨우쳐줍니다.
주님께서는 구리로 만든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도록 합니다. 꼭 구리뱀이어야 할 필요도 사실 없습니다. 그것이 깃발, 무지개, 뜬구름, 아무거면 어떻습니까? 구리뱀 자체의 주술적인 힘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 있으니까요. 아니, 그분의 구원 의지를 백성들이 이제야 믿고 있기 때문에 생명을 건지게 된 것이니까요.
그들은 이제야 시련(불뱀)에서 눈길을 떼어 주님이 주시는 희망(구리뱀)을 쳐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실은 애초에 그들이 광야로 불려 나올 때부터 그들을 살리시겠다는 참 생명의 표지는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제야 겨우 알아보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말씀합니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도 홍해(세례성사)를 건너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나면 막바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광야라는 낯선 정화의 땅으로 나온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의 십자가들을 버리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은 불뱀이 되어 우리를 헤치려 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백성을 만들려고 불러내실 때부터 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의 표지를 담아 주셨기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이 세상’ 그리고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는(요한 3,16)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특히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우리의 생명의 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고난도 나를 살리려는 아버지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고난은 불뱀이 아니라 은총의 수로(구리뱀)로 변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고 높이 달리신 예수의 십자가가 온 세상의 생명의 수로가 된 것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