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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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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1-11-19 조회수1,920 추천수17 반대(0) 신고

얼마전 부터 수도원에 감기든 형제가 하나 있더니만

줄줄이 감기 바통을 이어받는다.

관구장님이 감기가 들어서

좀 놀렸더니만

그게 나에게 올 줄이야

사흘 전부터 목이 칼칼하게 아프더니

하루가 다르게 콧물이 나오고

목소리가 변해간다.

 

내일 모레부터

남자 장상 협의회 총회도 있고

강의와 대림특강 등이 이어져 있는데

이제 슬슬 고민이 된다.

관구장님은 감기 빨리 나아서

회의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고

설겆이까지 대신 해 주신다...

 

이상하게도

한 형제가 걸려서 나을 때 쯤이면

다른 형제가 걸리고

그 형제가 나을 때 쯤이면

또 다른 형제가 걸리는 걸보니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도

꼭 마귀처럼 여기 붙었다가

도저히 안될 성 싶으면

다른 데로 붙곤 하는가부다...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니?>

주님께서 여리고의 소경에게 묻듯이

나에게도 물으신다.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나는 무엇을 주님께 청할 것인가?

우선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한다면

 

<주님, 이놈의 감기 좀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해야 할 것인가!

 

여리고의 소경은

앞못보는 신세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영적으로 눈이 먼 앞못보는 장님일진대

우리 또한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십시오!>

<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해야 하리라.

 

내 눈이 열려야

세상을 올바로 보게 되고

다른 형제 안에 좋은 것을 보게 되고

마침내

세상과 사람들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볼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여리고의 소경이 가졌던 그러한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 또한

<주님, 제 영안을 열어주소서!> 하고 청해야 하리라.

 

얼마 전에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안경원을 찾아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알을 다시 끼워 넣었다.

한 단계 도수를 높였는데도

멀리 것은 잘 보이는데

오히려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보이니

슬슬 노안이 시작되는가보다.

육신의 눈이 점점 어두어지니

이제는 영안이 점점 더 밝게 열려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육신의 눈이 먼 상태에서

그 유명한 <태양의 노래>(일명 피조물의 노래)를 지어내었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

불과 물...

온갖 꽃들과 대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던 것이다.

육신의 눈이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것과

육신의 눈이 먼 상태에서 영안으로 자연을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육신의 눈은 외형의 아름다움에 머문다면

영혼의 눈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깊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연도

세상도

역사도

그 어떤 것도

육안으로만 바라보며 본다고 하기에

세상은 거짓투성이이고 허상일 뿐이다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적인 스승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께 바라야 할 것은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는 청이다.

 

다만

여리고의 소경처럼

정말 간절한 심정으로 그것을 청한다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허락하시리라.

그에게 허락하신 것처럼...

 

암, 그렇구 말구...

아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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