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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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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1-11-20 조회수1,764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 33주간 화요일 말씀(2마카 6,18-31; 루가 19, 1-10)

 

복음은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다.  독서는 대 박해 시기에 엘르아잘이라는 노인의 순교 장면이 감동적이다.  두 말씀을 통해 ’신앙인의 단계’에 대해 묵상해본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인간이면 누구나 영원을 희구하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인간의 미소함과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늘 벗어나고 싶어하는 자라면 그는  ’키작은 자캐오’인 것이다.  

 

그 날, 자신의 영원한 갈망을 채워줄 수 있고 허약하고 미천한 상태에서 해방시켜 줄 것 같은 분을 만났다. 나뭇잎들 사이로 신분을 감추고 엿보고 있었을 뿐 용기가 없는 그를 그분이 먼저 불러내어 말을 걸어오셨다.  그리고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요청하셨다.

 

이제 자캐오는 그분을 자신의 중심(집)에 모시게 된다.  그의 마음은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분을 모시고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은 스스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일을 찾아 저절로 움직인다.  

 

그가 한 맨 처음의 행동은 자신에게 붙어있었던 수식어들을 떼어내는 작업이었다. ’돈 많은’그는 그 돈을 가난한 이웃을 위한 자선으로 반환하고,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불리웠던 그는 남을 속여먹었다면 율법의 규정보다 배나 되는 보상으로 죄인의 수식어도 떼어내고자 한다.  또한 당시의 세리들의 관행으로 보아서 남을 속인 죄를 보상하려면 또 하나의 수식어였던 ’세관장’이라는 직업조차 어쩌면 내어놓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그는 그분 외에는 도무지 가치를 두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그것은 그가 갈구하던 분을 만난 후, 그분 외에는 세상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았고 그분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리라. 그분과의 일치, 그 깊은 만남은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얻지 못할 참 기쁨과 구원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리라.

 

자캐오의 이야기가 신앙인의 여정을 이야기한다면,

처음의 갈망의 단계를 거쳐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분과 만나 그분을 내 안에 모시는 것까지가 소위 그리스도 신자가 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우리를 수식하는 많은 꼬리표들 즉 ’돈, 명예, 신분, 학벌, 직업, 나이 등...’의,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와 기쁨을 가로막는 수많은 딱지들을 떼어내는 작업들이 내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이웃들을 바라볼 때에도 그런 딱지들을 떼어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의 단계는 독서의 엘르아잘과 같이 세상이 주는 안락함보다는 숭고하고 거룩한 주님의 법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순교자적 믿음의 단계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얼마 만큼의 수식어들을 떼어낸 상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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