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가야!' | |||
---|---|---|---|---|
이전글 | 한 사람이야기(12/19) | |||
다음글 | 이상한 하느님(12/20) | |||
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12-19 | 조회수1,640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말씀(판관 13, 2-7. 24-25;루가 1, 5-25)
이사악, 야곱, 사무엘, 삼손, 세례자 요한, 이들은 모두 아기를 못 낳는 부부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인물들이다. 기나긴 세월을 하느님께 간구하고 바래서 얻게 된 아들들이다.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듣게 되었을 때, 그들 부모의 심정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이었을 것이다.
환호성을 올려야 할 기쁨의 정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아니 게다가 믿을 수 있는 징표까지 달라고 한다면 하느님은 얼마나 기운이 빠지시겠나?
주님은 기쁜 소식을 어서 빨리 들려주려고 천사를 파견하셨다. 아무 데서나 아무 때에나 그런 엄청난 소식을 듣게되면 혹시나 못 믿어워할까봐 장소와 시간도 용의주도하게 선택하셨다. 일생에 한번 걸릴 듯 말 듯한 분향의 행운까지 얻은 거룩한 예배시간에, 천사가 나타나기에 적합한 성전 깊숙한 지성소에서, 최고 행복의 전언을 들려주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아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닌 구세주의 길을 준비할 하느님의 특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민족 전체가 고대하던 아기였음을 알았을 것이다. 즈가리야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사제였기 때문에 천사의 실망은 더욱 컸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러나 즈가리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당연한 일로써 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 세월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며 살았건만 정작 하느님의 전능엔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참회의 기간은 아니었을까? 아내의 배가 불러오는 동안 내내 정말로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즈가리야를 비웃기는 쉽지만 나 역시 간구하는 내용이 정작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때가 얼마나 되는지... 그 시기와 방법은 주님께서 선택하신다는 생각은 물론 가져야 하지만(내가 하느님이 아니므로...) 어느 때는 하느님이 들어 주실 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습관적으로 기도문을 중얼거릴 때가 더 많다.
그 긴 침묵의 기간의 참회는 아기가 태어나고도(하느님의 약속의 실현을 눈으로 보고도) 다시 팔일 동안이나 지속된다. 그리고 터져 나온 찬미가, "즈가리야의 노래"는 ’아가야’(1,76)에서 목이 메어 눈물바다가 되었을 것 같다.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구세주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도 가슴 벅차게 불러야 할 ’아가야’다.오늘 즈가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아기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기 예수는 정말 오시리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 ’건성으로 전례에 참례하는 것은 아닌지’ 새롭게 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