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꼬봉이자 따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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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1-19 | 조회수2,476 | 추천수25 | 반대(0) 신고 |
1월 20일 일요일-요한복음 1장 29-34절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예수님의 꼬봉이자 따까리>
청소년들과 지내다보니 여러 유형의 부모들을 만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정도(正道)를 걷도록 가르치기보다는, 적당히 세상의 비리와 타협하며 살기를 가르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식의 성적을 보다 높이 끌어올리고, 자식이 혹독한 경쟁에서 이겨내 마침내 이웃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혈안이 된 부모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가끔씩 반복되는 탈선의 악순환에서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백방으로 뛰어 다니는 부모의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한번 면회 다녀가시라"고 연락해도 "그런 아이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부부가 갈라서면서 서로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려는 부모들, 그렇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를 끝끝내 모른 척하는 친척들의 모습에 또 다시 가슴은 미어집니다.
제가 우리 사회의 너무도 어둡고 비관적인 측면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제가 받는 솔직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삶, 묵묵한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증 장애아들과 문제아들만 골라 자신의 자녀로 계속 줄줄이 입양시키고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 부부는 자신들의 그런 선행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구 싫어했지만 입양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녀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어 포기하는 이 시대, 이분들의 관대한 마음을 통해 자비 가득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분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분들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너무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의 삶은 오로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얼마나 경건하게, 얼마나 충실하게 삶을 살았으면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야말로 오시기로 된 메시아일거야"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을 통해 사람들은 오실 메시아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추측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선구자, 예언자로서의 삶, 속된 말로 예수님의 꼬봉이자 따까리로서의 삶인 동시에 철저하게도 주님을 증거하고 예표한 메시아로서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 삶을 통해 하느님의 자취를, 하느님의 향기를 느낍니까? 우리의 삶은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와의 인연을 통해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 도움을 받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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