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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쁘고 겸손하게 새로운 한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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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12 조회수2,120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0, 2, 12 설날 복음 묵상

 

 

민수기 6,22-27 (사제의 축복)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주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 주시고, 주님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주님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야고보 4,13ㄴ-15 (부자들에 대한 경고)

 

자 이제,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도시에 가서 한 일년간 지내면서 장사하여 돈벌이하겠다"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연기입니다. 차라리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겠다" 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루가 12,35-40(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도둑에 관한 상징어)

 

여러분의 허리는 동여매고 등불은 켜놓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같아야 합니다. 주인이 언제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든지, 와서 (문을) 두드리면 즉시 열어 주려고 말입니다. 복되도다,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기다리고) 있는 그 종들은!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주인이 (허리를) 동여매고는 그들을 (식탁에) 자리잡게 하고 다가와서 그들에게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 주인이 밤 이경이든 삼경이든 와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종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복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곧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는지 집주인이 안다면 자기 집을 뚫도록 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시오. 사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인자는 옵니다.

 

 

<묵상>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은 특별한 만남이 있는 날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끔 하느님과 함께 이끌어주신 조상님들과 위령 미사와 차례를 통해 만납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과 살아있는 이들이 만나는 것이지요.

 

아랫사람이 윗어른들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덕담을 듣지요. 지금까지 가정과 사회를 돌보고 우리를 길러주신 어른 세대와 앞으로 가정과 사회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가 만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열 일 제쳐두고 만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충실했던 삶의 결실을 다른 여러가지 선물꾸러미와 함께 가족들과 나누게 됩니다.

 

또한 새해 첫날을 만납니다. 새로운 한해를 만나는 것이지요.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허물로 누벼놓은 낡은 한해를 가져가시고, 새롭게 삶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백지와 같은 한 해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하루 하루의 삶을 그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 설날이지만, 분명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단지 우리의 느낌만은 아닐 것입니다. 은총은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참으로 새로운 마음, 기쁜 마음,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이 한해를 진정 새로운 한해, 새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깨어 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어제와 다른 새로운 오늘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깨어 있음" 아닐까요?

 

혼인 잔치에 돌아오는 주인을 맞아들이는 종들은 주인이 가지고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한 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정녕 새로운 한 해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한 해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겸손"이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니, 또 한 해를 맞는구나, 이 한해는 어차피 내 시간이니 내 마음대로 풀어나가도 괜찮다."라는 교만한 마음은 주님의 선물인 새해를 맞이하는 신앙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작년, 재작년도 아니고, 내년, 내후년도 아닌 올해는 인생에 있어서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특별한 한 해를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겠다" 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겸손함이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살길만을 찾기에 서로가 경쟁 상대이기 쉬운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에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 주시고, 주님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주님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라고 축복해 주고, 이 축복을 삶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이 곧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우리 민족은 대대로 설을 참 올바른 자세로 맞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새해에 하는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해 복 많이 주세요"라고 인사하지 않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주세요" 라는 인사는 무엇인가를 더 가지겠다는 뜻이라면,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나의 것을 나누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단지 입으로 하는 겉치레의 인사가 아니라,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당신에게 복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다짐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다짐이 조금은 무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입으로만 착한 일하고 입으로만 복을 빌어줄 뿐, 실제로는 자신의 것만 챙기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몇 해전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에서 붙인 대자보를 보면서 이를 실감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자보의 제목이 무엇인지 아세요? "새해에는 복을 빼앗기지 맙시다"였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새해 인사까지 나오게 됐는지 안타깝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었죠. 제발 이런 말도 안되는 새해 인사가 오고가는 슬픈 세상이 빨리 사라져버리면 좋겠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몰아내고, 진정 하느님의 축복이 넘치는 평화의 세상을 일구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새해를 맞는 우리의 다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벗님들!

올 한해 진정 주님의 은총을 다른 이들과 넉넉히 나누는 아름다운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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