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떡라면과 돼지족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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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2-16 | 조회수2,194 | 추천수22 | 반대(0) 신고 |
2월 17일 사순 제 1주일-마태오 4장 1-11절
"예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떡라면과 돼지족발>
저는 한때 식중독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일 주일 가량 단식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담당 간호사님은 입원실 제 침대 앞쪽에 절대금식이란 팻말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참으로 돌이키기 싫은 기억입니다.
처음 한 이틀간은 링거주사도 맞고 해서 그런 대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특히 매끼 식사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이 병원에서 주는 식사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밖에서 사와서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은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머릿속에는 온통 평소 제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라면이며, 쫄깃쫄깃한 돼지족발 등등. 그때 저는 인간이 이렇게 먹는 것 앞에서 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인간의 생리구조상 하루 세끼 식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단식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하나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기 건강진단을 위해 또는 다이어트나 질병의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식은 하나의 목적성을 지니고 실시합니다.
지난 역사 안에서 살펴보면 대체로 단식은 부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또는 불의에 맞서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또는 민주화 운동의 한 방편으로 자주 사용되곤 했습니다. 이렇게 단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누군가의 고통에 연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위를 좁혀 그리스도교 안에서 단식이란 주님 말씀에 보다 깨어있기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입니다. 또한 고통 당하신 예수님과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의 삶에 동참하려는 하나의 표현입니다. 작은 몸짓이지만 단식을 통해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수난에 상징적이지만 보다 가시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오신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적인 한계와 나약함을 지니시고, 고통과 배고픔을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그냥 40일은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단식 중의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들입니다. 배가 고파서 거의 탈진상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 도달한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갖은 감언이설과 저 같았으면 당장 넘어갔을 달콤한 유혹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님을 현혹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혹 앞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시고 꿋꿋이 이겨내십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순명, 끊임없는 자기포기의 결과는 모든 유혹을 이겨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극복하신 가장 큰 비결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충실성 그것이었습니다.
정말 부족한 우리지만 하느님 아버지께 충실하다면 우리도 유혹 앞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굳게 믿고, 그분 안에 우리 삶이 뿌리내리고 있다면 우리는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많은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기도로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유혹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나만큼은 주님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우리의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갖은 권모술수와 갖은 비리 앞에서도 하느님이라는 토양에 깊이 뿌리내렸기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향기로운 한 그루 나무로 살아가는 이번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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