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괜찮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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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3-05 | 조회수1,69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사순 제3주간 화요일 (2002-03-05)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다니 3,25.34-43 복음 : 마태 18,21-35
[괜찮아]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 18,21-35)
필리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때에 나는 한 수녀원에 머물고 있었다.
재밌게도 간혹 수녀원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연락도 없이 안 오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어느 주일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한 시간 여를 기다리다 지친 수녀님들과 신자들은 결국 다른 신부님을 수소문해서 가까스로 미사를 지낼 수 있었다.
그날 오후, 문제의 그 신부님이 수녀원에 사죄를 하러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늦잠 자다 그랬다는 것이었다.
처음도 아니니까 이번엔 단단히 주의를 주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수녀님께 물었다.
그랬더니 어이없게도 수녀님은 와서 잘못했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겠냐며 빙긋 웃고 가버렸다. 그후 그 신부님은 계속 수녀원의 주일미사에 늦지도 않고 꼬박꼬박 잘 오셨다.
그 용서하는 마음의 효력은 뒷날 내게도 미쳤다. 어느 주중에 내가 독서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미사 시간 전에 성당에 가 미사경본을 챙기고 내가 읽어야 할 부분에 표지를 해두었다.
그런데 막상 복음환호성을 읽으려 하니 표시해 둔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입당 때에 그리 된 모양이었다.
그 순간 ‘이분들은 나를 기다려 줄 거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을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와 수녀님들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들은 “괜찮아” 하고 말해 주었다.
그때의 그 ‘괜찮다’ 시리즈는 참 맛있었다.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나 자신과 상대방에게 얼마나 커다란 따뜻함과 용기, 희망과 신뢰를 불어넣어 주던가.
그뒤로 나도 어지간한 일에는 ‘괜찮아’ 하며 넘기는 연습을 했다.
예수님이 이 모든 용서와 관대함의 원천이시고 의지처이시다.
우리 모두를 끝없이 용서하고 계신 예수님, 저희도 부디 그 마음을 닮아가게 하소서.
장영예(가톨릭 파트너십 연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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