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단순한 믿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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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3-09 | 조회수1,883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사순 제4주일 (2002-03-10)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1사무 16,1ㄴ.6-7.10-13ㄱ 독서 : 에페 5,8-14 복음 : 요한 9,1-11
[단순한 믿음]
(본문이 길어 필자가 묵상한 구절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그의 이웃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그는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 9,1-11)
까만 밤하늘에 별은 총총 빛나고 살에 와 닿는 공기는 여름날 찬물처럼 상쾌했다. 불빛 희미한 산기슭에 멈춰서 우리는 둘씩 짝을 지었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한 사람은 길잡이가 되었다. 길잡이는 눈감은 이를 인도하여 어느 나무이든 눈감은 이를 상징하는 특정한 나무 앞으로 데려갔다.
눈감은 이는 나중에 눈을 뜨고 직감만으로 자기 나무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길 안내를 받는 동안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또 손으로 더듬거려 나무의 특성을 새겨두자니 오감에 육감까지 동원해야 함은 물론이었다.
당혹과 난감함이 진정되고, 사람들은 둘씩 짝지어서 이 나무 저 나무를 향해 나아갔다.
마지막 팀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시간이 걸렸어도 눈감고 찜해 놨던 자기 나무를 찾았다.
그게 다들 신기했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상황에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는 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의심과 회의에 젖었던 이,
슬리퍼를 신은 탓에 발목 여기저기 난 상처를 호소하는 이, 못난 길잡이 만나 짝이 광야에서 고생했다고 자백하는 이 등등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다.
그러는 중에 하나로 모아지는 생각들이 있었다. 자기의 길잡이를 전적으로 믿고 그의 걸음과 안내를 따랐던 이들은 앞을 못 보는 캄캄함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길잡이가 자신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지 못했던 이들은 중간에 살짝 눈을 떠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자신의 의구심을 해결해야 했다.
빛을 얻게 된 소경의 믿음은 단순하다. 예수께서 “가서 씻어라” 하시길래 물러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 한다.
그처럼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은 그분을 그냥 믿고 의지하는 것이리라.
나를 잘 인도하기 위해 나보다도 더 많은 고민과 고뇌를 하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기에.
장영예(가톨릭 파트너십 연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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