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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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2-03-22 | 조회수2,241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말씀>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묵상> 내가 아는 교우들 중에서 참으로 크리스천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런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황당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마음 고생을 하기도 한다.
때론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몸을 사리기도 하고 교회와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경우에 처하신 것같다.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예수님은 참으로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시면서 열심히, 아름답게 사셨는데 주위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돌에 맞아 죽을 위기까지 겪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마저도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심보였다. 예수님께도 그렇게 했던 인간들이 지금도 그러지 않겠는가마는 그 적은 멀리 외부에 있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바로 너, 내 친구, 내 동무, 나와 함께 사귀던 너!>라고 시편작가는 그 황당함을 노래한다.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고 종국에는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그분을 십자가에까지 못박은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처럼 오늘도 우리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여 아름답게 헌신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보다 더 인정받고 사랑받고 칭찬받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기하고 질투하여 나쁜 쪽으로 몰아부친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일일 게다.
나는 누구를 시기질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보다 더 유능하고 똑똑하고 이쁘게 하느님을 섬기고 그래서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로부터 사랑받고 칭찬받는 형제 자매들을 은연중에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그들이 도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그렇게 아름답게 살면서 선업을 행하고 있는데 왜 깔아뭉게도 내팽겨치려고 한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다른 이유를 대면서말이다.
유대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기 때문에 이는 독성죄이기에 단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와 비슷하게 형제는 혹 자매는 자신의 능력과 미모와 재력을 동원하여 본당신부와 수녀를 미혹에 빠뜨려 하느님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기에 단죄한다는 논리를 편다.
한마디로 웃기지 않은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 자신이 그 형제, 자매보다 더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함에 대한 콤플렉스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지 말자. 형제, 자매를 나보다 잘낫다고 해서 시기질투하지말자. 오히려 그런 형제, 자매를 주심에 깊이 감사드리자. 그래야만 우리는 참으로 부활할 수 있다. 나의 콤플렉스에서부터도 극복하여 해방될 수 있다. 부활이 별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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