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어서기 (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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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우진 | 작성일2002-04-02 | 조회수1,608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부활은 일어남(그리스어 egeiren: 일어나다)과 관계 있는 말이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체념, 실망과 상처로 둘러싸인 무덤에 그냥 머물러 있으려하고, 적당히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런 삶으로 부터 일어난다는 것은, 즉, 부활한다는 것은 내가 다칠 수도 있음을 암시해준다. 일어나려면 삶과 대면해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누워있고 싶어하는 것이다. 대면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떨리는 것이기에 아니 누워 있어도 왠지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말에도 사용되는 egeiren은 치유사화에도 사용된다. 즉, 치유사화에도 부활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사도 행전 3장을 인용하고 있는 1독서를 통해 모태에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고치는 사도들을 만나게 된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힘으로 태생 앉은 뱅이를 일으켜 걷게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줄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은 다른 이들도 부활하도록 이끌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억압을 떨치고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에 신뢰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해준다.
그렇기에 그 태생 소경은 두려움과 체념, 실망과 상처로 둘러싸인 무덤, 혹은 삶이라는 자신의 장애라는 무덤을 딛고 "일어서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며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었으리라.
지금 날 못 일어서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그것이 "나" 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 나약한 인간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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