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육의 눈을 감고 영의 눈을 떠보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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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4-02 | 조회수2,319 | 추천수26 | 반대(0) 신고 |
4월 3일 부활 팔일축제 내 수요일-루가 복음 24장 13-35절
<육의 눈을 감고 영의 눈을 떠보니>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크게 실망한 두 제자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엠마오를 향해 길을 가던 때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슬며시 두 제자 사이로 끼어 드십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그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느 집에 드시어 빵을 나누는 순간,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걷고 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으면서도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기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이미 예수님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반나절밖에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육적인 눈을 감고 영적인 눈을 뜨게 되는 은혜로운 체험을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을 몰라봤던 이유는 그들이 육의 눈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육의 눈으로는 육적인 것밖에 볼 도리가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육적인 눈을 감고 영적인 눈을 뜨면 영적인 것을 볼 능력이 생깁니다. 육의 눈을 감았던 제자들이었기에 영적인 눈을 뜰 수 있었고, 비로소 그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자매님의 엠마우스에 관한 묵상글을 읽고 크게 공감을 느꼈습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고3 수험생을 둔 자매님의 체험입니다. 아이는 스트레스에 아주 약한 독특한 심리구조를 지녔었기에 수험생 본인은 물론 자매님 역시 아주 힘든 1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신부님 한 분이 자주 아이의 대화상대가 되어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등 아이에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런 신부님의 도움에 힘입어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은 신부님의 그런 도움 앞에 너무도 감사했고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신부님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답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처럼 어려운 숙제가 또 없더랍니다. 호텔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깔끔한 식사를 한번 대접해드릴까 생각도 해봤고, 품위 있어 보이는 옷 한 벌을 사드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 것들은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민에 빠져있던 순간 자매님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신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꼭 그 신부님께만 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김혜연, "기쁨과 희망 66호 참조).
자매님의 체험담을 읽으면서 참으로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엠마오로 길을 가던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주신 예수님은 그들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태도는 "내가 너희에게 빵을 떼어주었으니, 이제 너희도 나한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빵을 떼어주라"는 요청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수도자나 성직자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실천, 헌신, 봉사, 용서, 이런 것들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당연한 의무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어느 한 친절한 신부님이나 수도자의 도움을 통해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면, 그것으로 잘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들에게 답례를 해 드려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물질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경우 그분들께서 하늘에 쌓았던 보화를 하나 훔치는 일이 됩니다.
가장 바람직한 답례를 원하신다면, 그분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십시오. 다른 무엇보다도 그분을 향한 정성스런 기도로 도와드리십시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가장 곤란한 이웃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 이웃에게 보답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엠마우스의 교훈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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