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완전히 찌그러지는 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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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4-24 | 조회수2,810 | 추천수31 | 반대(0) 신고 |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요한 21장 1-14절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완전히 찌그러지는 순간>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의미" "삶의 좌표" "삶의 중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제자 공동체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미 두 번이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몇몇 제자들에게 드러내셨지만 다들 긴가민가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하면서 반신반의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예수 부활"이란 기막힌 사건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고, 또 다들 입은 살아서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제자들의 공동체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던 중에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일단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먹고 살아야되지 않겠냐"며 복직을 선언합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보십시오. 예수님이 빠져버린 제자 공동체는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선장 잃은 난파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미도 의미도 삶의 희망도, 이정표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떠난 제자 공동체에 남은 것이라고는 허전함과 답답함, 분열과 의견충돌, 배고픔과 서글픔과 같은 쓸쓸한 감정들뿐이었습니다.
천장만 바라보고 있기에 너무나 답답했던 베드로, 속이 상해서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던 시몬 베드로는 비난의 화살을 홀로 맞고 있자니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습니다.
또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우선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시몬 베드로는 "잘들 해보소,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갈라네"하면서 집을 나섭니다.
시몬 베드로가 앞장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미적미적 따라나섰습니다.
"그래도 고기잡이, 이 분야만은 내 전공 아니겠어? 다들 배도 고프고 속도 쓰릴 텐데, 고기나 왕창 잡아 마음을 달래줘야지"하면서 시몬 베드로는 옛 가락을 되살려 열심히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웬걸!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시지 않은 어선,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쓸모 없는 폐선, 유령선일 뿐이었습니다.
밤새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그물을 던져보았지만 고기들은 전혀 협조해주지 않았습니다. 고작 올라오는 것이 수초요 쓰레기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전문직 경력을 한껏 되살리기 위해 앞장섰던 시몬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철저히 구겨집니다.
"어이 시몬 베드로, 어떻게 된거야? 전문직이라더니?" "왜 좀 쉬게 놔두지 우리까지 끌고 와서 생고생을 시키나?" 다들 투덜거렸습니다.
인간 베드로가 완전히 찌그러지는 순간, 수제자 베드로가 완벽히 이미지 구기는 순간, 주님께서 베드로 앞에 나타나십니다.
단 한번의 그물질로 당신의 능력을 부여주십니다.
죽으라고 그물을 치지만 왜 번번이 허탕을 치겠습니까?
우리 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도직이나 봉사활동이 왜 이렇게 무의미하고 삐걱댑니까?
주님과 함께 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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