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눈만 뜨면 생각나는 사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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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4-06 | 조회수2,387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4월 7일 부활 제 2주일-요한 20장 19-31절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눈만 뜨면 생각나는 사람>
가끔씩 젊은 연인들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어떤 상태에 도달했을 때 연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상태는 아마도 이런 상태이겠죠?
아침에 눈만 뜨면 그가 생각나서 습관처럼 문자 메시지를 띄우고, 밥만 먹고 나면 자동으로 그가 보고 싶어서 그의 핸드폰 번호를 눌러야만 하는 상태 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쇼윈도에 걸려있는 좋은 옷을 볼 때, 경치 좋은 곳에 서면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상태라면 그 사이는 연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오랜 기간 예수님을 떠나 살았던 삶, 철저한 배신과 불신의 삶을 끝맺고 마침내 예수님을 연인으로 받아들이는 토마스 사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을 향해 던진 이 한마디 말은 간단한 말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 장엄한 신앙고백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뚜렷이 확인했던 토마스 사도의 믿음은 이제 철옹성처럼 굳어져만 갔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을 마치 극진히 사랑하는 연인처럼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냥 주님, 혹은 우리의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토마스 사도에게 있어서 한 인격체, 주인이자 연인, 삶의 의미요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제자들 가운데 부활하셨을 당시 토마스 사도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지적이고 논리적이었으며 현실적이었었던 토마스 사도는 따지기 좋아했으며 의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사도는 다른 제자들이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이것들이 다들 짜고 날 놀리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이! 자네들, 지금 날 놀려먹으려고 짰지? 죽어도 난 못 믿겠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걸게 한 잔 사겠네"하고 절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목숨걸고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던 토마스 사도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 순간부터 토마스 사도는 미안하고 창피해서라도 더욱 부활하신 예수님을 철저히 믿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토마스 사도의 신앙은 한 단계 크게 도약합니다.
아마도 그 뒤에 다른 제자들은 토마스 사도만 만나면 이렇게 놀려댔을 것입니다. "어이! 토마스! 진짜라면 걸게 한턱 낸다더니, 언제 한잔 내야지?"
오늘 토마스 사도를 생각하며 한가지 개인적인 반성을 해봅니다. 토마스 사도는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예수님이 삶의 모든 의미이자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입니까? 혹시라도 "나의 하느님"이 아니라 멀리 딴 세상에 존재하는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그분이 "나의 하느님"이라면 우리는 보다 자주 그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보다 자주 그분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보다 자주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그분과 결부시켜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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