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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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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7-13 조회수1,567 추천수14 반대(0) 신고

연중 제 14주간 토요일 (이사 6.1-8: 마태 10,24-33)

 

언젠가 피정 때의 일이다.  마태오 한 권을 가지고 세시간에 걸쳐 통독을 해나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조에 7-8명씩 둘러앉아서 약간 빠르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읽어나가야 세 시간 안에 28장 전체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 외에 어떤 분석도 이해도 필요없이 마음에 닿는 구절이나 단어들에 표시만 해두고 다음 구절로 쫓아가야한다. 그야말로 최대한 머리를 쓰지 않고 성서를 읽는 방법이다.

 

통독이 끝나고 한 시간 가량 각자 헤어져 표시해둔 구절들이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를 알아낸다. 나는 최대한 관찰자로서의(분석자가 아닌) 입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트에 담담히 구절들을 적어내려갔다. 처음엔 산발적이었던 내용들이 차츰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발견을 하게 되었다. 많은 부분이 ’두려움’에 대한 주제로 종합되었다.

 

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를 지배하고 있던 혼란한 감정들의 정체가 바로 ’두려움’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온 여러 가지 걱정과 근심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어려움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전에 없던 일이 늘어나면 그만큼 걱정도 늘어나서 그러려니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들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것은 뭔가 일을 잘 해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었던 것이었다.

 

사실 남에게 좋지않은 소리를 듣는 것을 못견뎌하는 나로서는 사람들의 평가에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 어떻게 하면 실수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까, 어떻게 하면 욕먹지 않고 일을 잘 해낼까 하는 것들이 근심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밑줄을 그어둔 구절들은 모두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에게 내팽겨치는 그런 구절들이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의 상태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밑줄 그어둔 구절들 속에는 그런 내 마음에 들려주는 하느님의 처방전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당신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들이었다. 어떤 욕도 어떤 비난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들이었다.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뵙고 두려움에 떤다. 하느님이 무서워서 떠는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더러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느끼는 위약감(危弱感)인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엄청난 격차를 목격한 위태로운 감정은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는 탄식으로 표현된다. 그분의 고결함 앞에 자신의 더러움은 감춰질 수 없이 극명하게 드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이라는 중얼거림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의 걱정은 스랍들이 가져온 뜨거운 돌에 입술이 정화됨으로써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이제 그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용감하게 나설 수 있을 만큼 변화된다.

 

나도 그랬다. 뽑아낸 구절들 속에서 하느님의 처방전을 읽어내는 순간, 이미 내 마음 안에는 고요한 평화가 자리잡았으며, 그 평화는 피정의 마지막 순서인 성체조배를 하는 동안 내내 감사의 눈물로 흘러 넘쳤다.

 

"저 울보같지요? 자꾸 눈물이 나와요."

"그래, 울보야. 그런데 하나 비밀을 가르쳐줄까?"

"뭔데요?"

"실은 나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너처럼 많이 울었어."

"겟세마니 동산에서요?"

"아니, 성서엔 그 곳 한군데만 나오지? 하하하. 그런데 사실은 자주 그랬거든. "

"아, 그래서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자주 가셨던 거군요?"

"그래, 지금 내가 너에게만 비밀을 이야기해주 듯, 그 때마다 아버지도 나에게 당신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지. 그 때마다 아버지도 나에게 ’울보’라고 불렀어. ^^* "

 

예수님의 별명이 ’울보’라는 말, ’겁쟁이’였다는 말을 듣고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눈물도 계속 흘렀다. 웃으면서 울면 어떻게 된다는데.... 하며 둘이 또 웃었다.

 

요즘 또 평화가 깨지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슬그머니 머리를 든다. 이 시점에서 다시 이 복음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새롭게 마음을 다지게 한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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