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날의 십자가 순교(22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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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중호 | 작성일2002-08-31 | 조회수1,761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어느덧 9월 순교자 성월입니다. 휘몰아치는 태풍의 위력처럼 우리들의 일상의 삶 안에 순교의 열정이 휘몰아쳐 맑은 물이 흘러 넘치기를 기도해 봅니다.
(연중22주 복음 묵상)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기를 버린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처절히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버린 이들을 현양하고 성인들의 전구를 기르는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할 때마다 박해시대 우리 신앙 선조들을 떠올리며 우리 자신들의 신앙적 삶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벼슬을 버리고, 부와 명예를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그 중에서도 오직 순교를 위해 나의 분신인 자식을 버리기도 했던 여인들. 집에서 애타게 기다릴 갓난쟁이 생각에 어렵게 배교를 했지만 집에 돌아와 아기에게 젖을 물려 잠재워 놓고 다시 감옥으로 달려가 배교할 수 없다고 떼를 쓰던 여인들.
“너는 천주를 보았느냐?” 하는 박해자들의 질문에 “시골 백성이 임금을 한 번도 뵈온 적이 없다고 임금님 계신 것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천지 만물을 보고 만민의 창조주이신 천주 계심을 믿습니다.”라고 명쾌한 대답을 했던 믿음의 조상들.
이분들 앞에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나까? 하느님을 위해 신앙의 선조들처럼 내 모든 것을 바치지는 못할망정 하찮은 것에서도 자기를 버리지 못해 안달입니다.
가족간에도 텔레비전 채널 하나 양보 못해 토라지고, 모처럼 외식을 하러 나갔다가 선호하는 음식이 달라 토라집니다.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 누구 실수라도 하면 용납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시기합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편의와 자리 지킴을 온갖 수를 쓰고 사소한 것에 사람을 욕하고 따돌리며 이간질하면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내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버릴 필요가 없어진 이 행복한 신앙의 자유시대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순교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살아 나가야 할 순교는 바로 이름 모를 어느 늙은 수도자의 기도시에 나타난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버리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조금만 더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는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저는 어느 늙은 수도자의 이 기도를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내 자신을 버리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 다시 말해 오늘날 순교의 십자가 바로 이 늙은 수도자의 기도의 삶이 아닌가하는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바늘치명’이란 말을 떠올려봅니다.
작은 희생으로 잠시 바늘 끝에 찔린 것처럼 아픈 순간을 당하지만 그 다음엔 주님 뜻에 맞갖게 살았다는 기쁨이 샘솟는, 그래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는 현대식 치명말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는 첫 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선 조그마한 희생으로부터 자기를 버리는 연습을 해 보는 순교성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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