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칭찬받지 않기(9/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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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2-09-02 | 조회수1,645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루가 4,22)
<칭찬받지 않기>
살아가노라면 참으로 우리는 남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고자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게된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과 칭찬과 인정을 받고자 애쓰고 부모 또한 훌륭한 부모라는 세평을 받고자 한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이다.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참 신앙이 깊은 사람이다. 참 좋은 사람이다. 참 훌륭한 사람이다. 참 훌륭한 사제이다. 참 거룩한 수도자이다. 참 강론을 잘하는 사제이다. 참 영적지도를 잘하는 사제이다. 참 봉사활동을 많이하는 자매이다."
세인들로부터 이러한 평가와 칭찬을 받을 때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기분 좋아진다. 그런데 그 반대상황이 되면 나는 속상하고 기분이 언짢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사실 세인들의 평가란 나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외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기에 정확한 평가가 될 수 없다. 하느님의 평가라면 모를까 세인들의 평가 때문에 내 기분이 좌우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오늘 예수님을 극구 칭찬하던 나자렛 사람들을 보라! 예수님을 극구 칭찬하고 그분의 말씀에 탄복하던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되었는가? 바로 그들이 예수를 벼랑에 떨어뜨려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자기들에게 거슬리는 소리를 했다고 해서 모두 화가 나서 그렇게 칭찬했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세인들의 평가란 이런 것이다. 자기들에게 좀 이로운 소리가 되면 극구 칭찬하고 약한 불편한 소리가 되면 분노하여 저주하게 된다. 그러니 이러한 평가에 연연해 하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가?
오늘 사도 바오로도 이러한 관점에서 고린토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나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 약하였고 두려워서 몹시 떨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세인들의 평가 때문에 두렵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평가에 연연해 하며 칭찬받을 궁리만을 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내가 칭찬받게 되면 하느님의 영광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하느님의 영광을 내가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칭찬은 받지말고 칭찬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칭찬해 주는 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을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고 나는 칭찬받으려 애쓰니 말이다. 우리의 영적 성장이 더딘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니겠는가!
어느 TV 프로그램에 그런 것이 있었던가? <칭찬합시다!>
그렇다! 칭찬받으려 하지 말고 칭찬하는 것, 여기에 영적 성장의 비결이 있다.
자, 오늘은 <칭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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