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F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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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9-02 | 조회수2,111 | 추천수23 | 반대(0) 신고 |
9월 3일 화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루가 4장 31-37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마을 가파르나움으로 내려 가셨다. 거기에서도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마다 그 가르치심에 경탄하여 마지않았다."
<FM>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그레고리오 교황님(5450-604)은 워낙 출중한 분이어서 그런지 그냥 그레고리오가 아니라 대(大) 그레고리오 교황님이라 칭합니다. 그만큼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교회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크나큰 기여를 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린 그레고리오의 가정은 한마디로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성덕이 뛰어나 후에 성녀가 된 실비아가 그의 어머니였는가 하면,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가 또한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바탕이 좋았던 그레고리오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0세의 나이에 당시 공무원으로서 가장 높고 명예로운 지위인 로마 시장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부친의 죽음을 계기로 그레고리오는 상속받은 재산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가 하면, 많은 수도원을 설립하여 자신도 겸손한 수사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수사가 된 그레고리오의 수도생활은 한 마디로 FM이었습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규칙을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고 철저히 지켜나갔습니다. 정도에 지나친 고행과 절제, 단식으로 인해 그레고리오는 결국 만성 위장병을 얻어 평생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레고리오의 이런 철저한 수도자적인 모습과 탁월한 성덕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590년에 생긴 유명한 일입니다. 당시 창궐한 흑사병으로 인해 펠라지오 2세 교황께서 세상을 떠나자 성직자들과 로마 시민들은 만장일치로 그레고리오를 교황으로 추대합니다.
조용한 수도자로 살기를 원했던 지극히 겸손했던 그레고리오는 교황직이 자신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야반도주를 감행합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교황에 오를 때까지 숨어있기로 작정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끝까지 그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워낙 그레고리오의 성덕이나 인품이 출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잡듯 샅샅이 뒤져 마침내 그레고리오를 찾아냈습니다.
"교황직을 수락하셔야 됩니다.", "안됩니다. 저는 부족해도 이만저만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한참 옥신각신 하던 와중에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로부터 교황 인정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그제야 그레고리오는 그 모두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교황이 되고 나서도 매일 12명의 가난한 이웃들을 자신의 식탁에 초대했던 교황님, 누가 봐도 인품이나 성덕이 하늘을 찌를 듯 하건만 언제나 자신을 "하느님 종들의 종"으로 부르길 좋아하셨던 교황님이 바로 대그레고리오 교황님이셨습니다.
이런 대그레고리오 교황님의 겸손과 성덕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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