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고의 전환(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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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2-09-20 | 조회수1,440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한국 순교성인 대축일은 우리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의 축제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의 주보 축일이기도 하다. 금년엔 특히 내년 1월 관구회의를 앞두고 총장님을 대신해서 총시찰자를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형제들과의 만남을 시작하는 개막미사를 봉헌하였기에 더욱 뜻깊은 날이다.
총시찰자 신부님께서 이런 우화를 들려주셨다. <어떤 젊은 히피 한 사람이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한 근엄한 노신사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노신사는 그 젊은이가 신발을 한 쪽만 신고 있는 것을 보고는 혀를 차며 "맹하게도 어디서 신발 한 쪽을 잃어버린 게군!"이라 하였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르신, 왜 그렇게만 생각하십니까? 저는 신발이 없었는데 오다가 신발 한 쪽을 주워서 신고 왔는데...">
우리는 우리의 관습이나 선입관 등에 의지하여 어떤 일이나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만 고정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건 옳은 것이고, 저건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것 좋은 것이고, 저건 나쁜 것이라고 서둘러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우리 카톨릭 신앙은 역설(Paradox)의 삶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곧 부활이요 생명이라 믿는 삶이다. 십자가는 어리석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세인들의 통념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곧 구원이요 생명이다. 사실 복음은 이 역설을 설파하고 있을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가 불행하다.> <지금 우는사람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웃는 사람이 불행할 수도 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해 주어라.> ......
순교자들의 삶은 이 복음을 받아들인 삶이었기에 역설의 삶이었다. 남들은 개죽음이라 생각하였을지라도 그들은 그것이 참 행복의 길이라고 여겼다. 행, 불행은 사고의 차이이다.
이 순교성인 대축일은 우리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청한다. 우리의 사고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생각에서 믿고 신뢰하는 사고로 바뀌어야 하고,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에서 희망적인 사고로 바뀌어야 하고, 미움과 증오의 생각에서 사랑과 섬김의 사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회개의 삶이다. 회개란 <사고의 전환, 의식의 전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명절에는 어떻게 사고하느냐에 따라 기쁘고 의미있는 축제가 될 수도 있고 괴롭고 고통스런 의무방어전이 될 수도 있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 귀찮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에서 가족들을 오랜 만에 요것조것 맛있는 것을 먹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귀성길이 엄청막히면 빨리 못간다고 짜증을 부리기보다는 그전보다 더 낫네라며 이 사람 저 사람 구경할 기회를 주셨다 생각하면 어떨까? 피곤하고 지친 축제이겠지만 우리의 사고가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만 전환될 수 있다면 하느님 나라의 축제를 미리 맛보는 기회도 되지 않겠는가?
순교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바꾸어 주소서. 그리하여 특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우리의 사고를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바꾸어 주소서. 당신들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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