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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의 날(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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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2-11-02 조회수1,713 추천수20 반대(0) 신고

외국에서 돌아오니 날씨가 무척 쌀쌀해져 있다. 덕수궁에서 우리 집에 이르는 거리의 은행나무들도 옷을 갈아입고 벌써 많은 잎새들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다. 어제는 바람도 무척이나 불었다. 나무들은 이 계절에 벗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나는 추위에 움츠리며 더 많은 옷을 껴입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문득 자연과 우리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반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면 자연은 옷을 벗는데 우리는 껴입고, 여름이면 자연은 옷을 껴입는데 우리는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하느님은 그렇다면 자연에 가까우실까 아니면 우리 인간에 더 가까우실까 쓰잘데 없는 생각까지 꼬리를 문다...

 

오늘은 위령의 날이다. 쌀쌀해진 날씨와 더불어 더욱더 실감난다. 위령의 날 하면 왠지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이 된다. 우리 보다 먼저 가신 우리의 기억속에 있는 영혼들과 또 우리 가까이서 임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해도 그렇고, 달력 마지막장을 남겨놓은 이 때 한해를 돌아보아도 별 결실이 없어보이는 우리 삶을 생각해도 그렇고 왠지 서글픔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이러한 답답하고 서글프고 초라한 인생이 오히려 실제가 아니고 희망과 기쁨, 행복과 자비가 실제로 우리가 누리게 될 현실임을 아이러니칼 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 갑갑했던 순간들 앞에 절망했던 욥이 그랬고, 죄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 절망에 놓여 있던 우리 인간을 죽음을 통해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자비가 그렇고, 불행속에 있어보이는 슬프고 괴롭고 가난한 영혼들이 실제로는 하느님의 충만한 은혜를 누릴 것이기에 기뻐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도 그렇다.

 

그렇다! 오늘 내 자신이 서글퍼 보여도, 내 가정이 서글퍼 보여도, 내 공동체가 서글퍼 보여도, 우리 교회가 서글퍼 보여도, 이 세상이 서글퍼 보여도 우리는 절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죽음보다 더한 병은 <절망>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하지 않았던가!

 

오늘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집착하고 있는 실망과 좌절을 집착하지 말고 그냥 떨어져 나가게 내버려두자. 나무가 그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새 삶을 위한 준비임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리가 우리 인생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실망과 좌절이라는 집착을 내어 던지면 참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주님의 메시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리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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