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제가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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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11-12 | 조회수1,889 | 추천수23 | 반대(0) 신고 |
11월 13일 수요일 성 루이지 베르실리아 주교와 성 갈리스토 카라바리오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가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꼭 작년 이맘때 저희 살레시오회에는 한 가지 큰 경사가 있었습니다.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 순교하신 두 분의 살레시오 회원에 대한 시성식이 있었지요.
오늘 기억하는 중국의 두 순교자, 루이지 베르실리아 주교님, 갈리스토 카라바리오 신부님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순교가 우발적인 것, 한 순간에 이루어진 순교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두 분은 선교사로 파견되기 전부터 순교를 준비하고 있었고, 순교를 미리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두 선교사가 중국으로 파견된 1920년대 당시 실제로 많은 선교사들이 가톨릭 신앙을 거부하는 지역에서 끊임없이 순교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그렇게 노력해보겠다", "한번 고려해보겠다"는 식의 약간의 타협만으로도 충분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교자들은 결연히 타협을 거부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안 좋으니 좀 기다려 보자", "조금 속도를 늦추는"는 계획만 세웠어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 순교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마치도 마지막 순간을 예견한 듯이 자신의 양떼를 위한 여행을 시작했고, 그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영웅적으로 순교의 순간을 이겨냈습니다.
안정된 생활 기반도, 사랑하는 가족들도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지구 정 반대편으로 무작정 떠나왔던 순교자들 앞에 펼쳐진 중국이란 나라는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선교사로서의 낭만이나 긍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매일의 고통과 끊임없는 십자가,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수용해야만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분 순교자는 매일 삶과 죽음 사이의 살얼음판과도 같은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두고 "너무 무모했지 않는가?", "조금만 차분했었으면 목숨만은 건졌을텐데", "좀 더 이성적이었으면 그리 되지 않았을텐데", "적당히 어느 선에서 양보했었더라면"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분 순교자는 지금 그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분들의 거칠 것 없는 용기, 숭고한 결단 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뵙는 듯이 살았던 굳건한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피가 기쁨으로 추수를 거두기 위한 가장 좋은 밑거름이란 진리를 잘 꿰뚫고 있었습니다.
1929년 5월 19일, 동티모르를 떠나 중국 땅 슈초우에 도착한 갈리스토 카라바리오는 베르실리아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됩니다. 다음은 갈리스토 카라바리오 신부가 서품 직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인데,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서품식을 통해 다시 한번 순교의지를 굳건히 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갈리스토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갈리스토가 아니고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 중국에서 오래 살 것인지 아니면 젊어서 죽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가 받은 선물을 사제로서 온전히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갈리스토 카라바리오 신부의 다짐은 불과 여덟 달 만인 이듬해 초봄, 순교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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