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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생님은 제 하느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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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12-12 조회수1,969 추천수24 반대(0) 신고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마태오 11장 11-15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선생님은 제 하느님이셨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습니다. 몹시 덜렁거리고 장난기가 유난히 심했던 저는 학교 안에서 자주 대형사고를 치곤 했었습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부처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너그러우시고 관대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담임선생님의 선처로 적당히 넘어가곤 했었지요.

 

그런데 한번은 제가 적당히 넘어가기 어려운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현관 앞에 놓인 대형 거울을 제가 통과해버린 것입니다. 거울이 보통 큰 거울이 아니었고, 동창회에서 기증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새 거울이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교장 선생님까지 그 모습을 보셨으니...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이 일을 어쩌나? 담임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울 값은 어떻게 하나? 부모님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어쩌지?" 갖은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며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거울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제 얼굴부터 살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조금밖에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하시면서 깨진 유리조각들을 손수 치우셨습니다.

 

아마도 그날 담임 선생님은 저 대신 교장실로 불려가서 호되게 질책을 당하셨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그 일에 대해서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너무도 미안했던 저는 그 뒤로 많이 회개했었지요. 담임선생님을 하늘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 속을 상하지 않게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시 아직 어린 저였지만 너무도 관대했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꼈습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짧은 날들이 마치 천국에서의 생활 같았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제 하느님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사람으로 여겨졌던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이 한가지 사실 때문에 너무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자비의 크기입니다. 하느님 자비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몇 천 배, 몇 만 배나 커서 우리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가 이토록 큰데 괜히 그렇게 걱정했잖아"하는 후회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확인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용서와 인내, 사랑이 얼마나 극진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나라입니다.

 

지옥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자비를 거절한 사람들, 다시 말해서 천국을 거절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천국에 들기 위한 우리의 조건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거절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거절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편 하느님 나라는 역설적으로 죽어서 가는 나라입니다. 우리들의 그릇된 생각과 잘못된 삶을 "죽여야"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소유와 욕심에 붙들려있는 한 인간은 천국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푸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천국은 온갖 물질적 풍요와 안락이 약속된 곳도 아닙니다. 진정한 천국이란 우리의 욕망이 절제되고 편리함이 포기된 그러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곳의 생활은 수도자의 생활처럼 검소하고 질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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