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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의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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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12-14 조회수2,670 추천수33 반대(0) 신고

12월 14일 금요일 십자가의 성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마태오 11장 16-19절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갈라 앉아 서로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고통의 사도직>

 

갓 서품된 사제, 오직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새 사제,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을 안고 활짝 꽃피어나던 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열정만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았던 이 젊은 신부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하느님도 무심하실 때가 많지요. 하느님께서는 이제 막 피어오르는 그 신부님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불치병"이란 십자가를 지우셨습니다.

 

그냥 물러서기 너무도 안타까웠던 그 신부님은 자신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사목과 치료를 병행하기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휴양에 들어간 신부님은 지루하고도 험난한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그 난데없는 십자가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신부님의 갈등과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돈독했던 그 젊은 신부님은 즉시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고통을 참아내는 일,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목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일은 이 세상 그 어떤 사도직 활동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부님의 고통의 사도직은 유명했습니다. 병세가 위중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뼈를 깎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울수록 예수님의 고통을 자주 생각하고 자신의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에 합치시키겠다고 숱하게도 다짐했었습니다.

 

신부님은 한번도 "여기가 아파, 저기가 쑤셔"란 말 한마디 않으셨습니다. 신부님 역시 병 문안 오는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셨습니다. 이왕 자신이 대표로 고통받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의 모든 고통을 같이 짊어지고 가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외적인 사목을 더 이상 할 수 없게된 신부님은 자신의 남은 삶을 재조직하였습니다. 영웅적인 고통의 수용과, 기도와 인내를 통해서 말입니다. 신부님은 고통과 절망의 장소인 병실을 기쁨과 평화와 회개의 장소로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저한 냉담함과 무관심을 가슴아파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잘 응답하는 것입니까? 바로 위에 소개해드린 신부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고통이나 십자가에 담긴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때로 하느님은 기쁨과 평화도 주시지만 고통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당신의 존재를 뚜렷히 보여주십니다. 건강할때나 병들었을 때나,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나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나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찾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환하게 미소짓는 하루, 견딜 수 없는 억울함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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