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식사(食事)가 아니라 식사(食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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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1-17 | 조회수2,291 | 추천수30 | 반대(0) 신고 |
1월 18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마르코 2장 13-17절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식사(食事)가 아니라 식사(食死)>
밖에서 맴도는 한 아이와 천신만고 끝에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약속 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허탕을 친 것입니다. 꽤 먼길이었기에 김도 새고 맥도 빠진데다 점심시간이 되어 혼자서 근처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깔끔해서인지 아니면 그날 근처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인지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손님, 여기 자리 났습니다." 하길래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제게 안내한 자리 맞은 편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쩔까 하다가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잠깐이었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또 식사를 하는 시간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숫기가 없는 저이기도 하지만 뭐라고 말 걸기도 뭣하고 해서 그저 서로 딴 방향을 바라보며 그렇게 껄끄러운 모양새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밥을 한 식탁에서 같이 먹는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한 식사는 식사(食事)가 아니라 식사(食死)였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단단히 체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식사는 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친구나 친지들, 동료들, 적어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하는 것이 식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식탁에 앉는다는 말은 서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서로 일치한다는 것, 서로 친구 사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 서로 존중하는 사이라는 것, 서로 한 마음, 한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식탁에 앉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구세주 하느님께서 당대 가장 손가락질 받던 부류의 사람들과 한 식탁에 앉으십니다. 긴가민가하지만 메시아 후보감이 틀림없다고 여겨지던 예수님께서 죄란 죄는 다 짓고 사는 사람들, 갈 데까지 간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십니다.
하느님이 세리와 창녀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는 것, 당시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큰 스캔들, 스캔들 중에 가장 큰 스캔들이었습니다. 특히 폼잡기 좋아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서서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의 본질을 명백하게 선포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위로의 손길을 느낍니다. "나이 들면 좀 나아지겠지?",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죄를 덜 짓겠지?"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얼마입니까? 눈덩이처럼 불어난 죄와 악습의 굴레를 괴로워하면서도 과감하게 벗어 던지지 못한 부끄러움의 날들이었습니다.
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란 기도를 끝도 없이 반복해온 제게 하느님께서 이런 말씀을 건네십니다. "도저히 현실성 없는 계획-의인이 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이제 그만 내려놓거라. 있는 그대로 살아가거라. 나는 죄인의 하느님으로 이 세상에 왔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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