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구한 사연들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 | |||
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3-18 | 조회수2,663 | 추천수40 | 반대(0) 신고 |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 마태오 1장 18-21절, 24절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기구한 사연들>
점심식사 후에 전화를 마친 한 아이가 제게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너무도 사연이 많은 울음 같아 잠시 기다렸습니다. 한바탕 폭풍이 몰고 간 뒤에 조금은 차분해진 아이에게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냐"고 물어보았지요.
아이의 대답에 제 마음이 너무도 아파 왔습니다. "아빠가 전화를 받았는데...한다는 말씀이 엄마가 도망갔데요."
이이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그들 나름대로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기구한지요. 다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아픈 사연들을 안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굴곡 많은 인생을 다 이야기하려면 소설을 몇 권 쓰고도 남을 정도여서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은 성요셉 대축일입니다. 매일 목공 실습을 하는 저희 아이들이기에 오늘은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성요셉 축일을 보냅니다. 가슴에 다들 커다란 상처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내일 하루만큼이라도 성요셉처럼 따뜻하고 과묵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요셉만큼 재수 옴 붙은 사람은 다시 또 없었습니다. 아주 늦은 나이에 어렵사리 장가를 가게 된 요셉이었기에 기대감이나 설렘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요셉을 기쁘게 한 일은 아내로 맞이할 마리아의 성품이었습니다. 비록 마리아가 나이는 어렸지만 사귈수록 마음이 당기고 정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유하고 순종적인가 하면 다름 한편으로 강인하고 담대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한평생 동고동락하기에는 딱 그만이었습니다. 완벽한 현모양처로서의 기질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만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착하고 아리따운 마리아와 한 평생을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미래는 한마디로 온통 장밋빛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에게 "마리아 잉태사건"은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이 소식은 충격중의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설마 아니겠지?"했습니다만,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요셉은 무엇보다도 극도의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하며 반신반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도대체 어떤 놈이야?"로 발전했지요. 마침내 "내, 이 놈을"하고 심리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갔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볼 때 "저걸 확 신고해버려?"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습니다. 조용히 해결하고자 크게 마음먹었습니다. 몰래 이혼장을 써주고 헤어지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 좋은 요셉, 관대한 성격의 요셉이었기에 하느님께서는 요셉을 선택하십니다.
한 평생 예수님과 성모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 삶이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완전히 종친 인생, 떨거지 인생이 되어버린 요셉이지만 묵묵히 순종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삶이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요셉은 한마디로 침묵의 성인, 경청의 성인이었습니다. 희생의 성인이었는가 하면 봉사의 성인이었습니다.
과묵한 성품을 바탕으로 어려운 주변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는 하루, 사사건건 쫀쫀하게 따지거나 지나치게 대들지 말고 관대한 마음으로 모든 이를 품어 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