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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생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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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21 조회수3,055 추천수41 반대(0) 신고

4월 22일 부활 팔일축제 내 화요일-요한 20장 11-18절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생초 편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한 평생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루어야할 가장 중요한 한가지 과제가 있다면 "하느님 체험" "부활 예수님에 대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체험이란 다른 무엇에 앞서서 하느님 자비에 대한 체험, 하느님 사랑에 대한 체험, 하느님 능력에 대한 체험이겠지요.

 

요즘 황대권 선생의 "야생초 편지"란 책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이지요.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서른 살부터 마흔 네 살의 새파란 청춘을 담장 안에서 보내던 그는 가톨릭으로 귀의하면서 나름대로 진한 하느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절실하고도 소중한 체험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국가보안법과 전향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결과 저는 두 달간 <징벌방>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수갑이 채워지고 팔 다리가 꽁꽁 묶인 채 하루종일 지내야 하니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개처럼 핥아먹어야 했습니다. 똑바로 누워서 잠잘 수도 없었습니다. 면회도, 책 반입도 전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포승 때문에 똑바로 누워 잠도 못 자고, 수갑 때문에 <개밥>을 먹으며 캄캄한 독방에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느님은 왜 저를 내치기만 하십니까?>

 

그러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열심히 기도 드린 적이 없었는데...

 

결국 가장 바닥까지 내려가서야 <하느님은 침묵이시다> <하느님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없다>는 말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로 상상해서 그려내는 그런 하느님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희망이 꺾이자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투옥 10개월 전에 결혼했던 저는 그때쯤 이혼했습니다. 그때부터 만신창이가 된 마음과 몸을 치료하기 위해 호흡, 명상, 요료법(尿療法)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눈에 띄지 않았던 교도소 마당의 야생초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생명의 하느님>에 새롭게 눈뜬 것입니다. 하루는 거미가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리 모기가 더 이상 해충이 아니고, 풀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지만 모두 나 자신과 같은 생명체였습니다. 제 친구였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런 뭇생명들과 함께 숨쉬고 대화하다 보니 독방에 있는 제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감옥생활은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갇힌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왜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울부짖기도 했지만 감옥에 보내준 것도, 거기서 풀어준 것도 이렇게 변화시켜 준 것도 모두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낍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황대권저 야생초 편지, 평화신문 720호 참조)

 

보십시오. 하느님 체험, 부활 예수님에 대한 체험만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하느님 체험, 부활 예수님에 대한 체험은 지상과제입니다.

 

죽음의 나락 그 밑바닥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힘, 처절한 고통 그 한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는 에너지는 바로 하느님 체험, 부활 예수님에 대한 체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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