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령과 성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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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 작성일2003-04-27 | 조회수1,73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령{聖靈}과 성화{聖化} ☜
성령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이것은 인간속에 내재하는 종교성{宗敎性}과 소위 영감{靈感} 아니고 神의 세계인 초월계{超越界}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성령의 체험{體驗}은 그 의미 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초월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령은 은사{恩賜}로서 어떤 형체{形體}를 취하게 되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성령체험의 초월성 {超越性}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성령 자체는 神의 영{靈}, 그리스도의 영{靈}으 로서 단순한 은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주체{主體}인 인격{人格}으 神인 것이 다. 그래서 성령은 사랑{愛}의 인격{人格}으로서 인간과의『교제』{交際}를 구{求}한다. 따 라서 성령은 초월계로부터 강림하는 것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가운데 내재하고 우리를 내측{內側}으로부터 감싸 주고 내측으로부터 살{生}게 하며 내측으로부터 사랑하고 내측으 로부터 거룩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의 체험은 참으로 내재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체험을 단지 초월적인 것이라고 파악할 때 우리는 성령의 강림을 외측{外側} 으로남 희구하는 것으로, 성령의 사랑 가운데 깊이 호흡하는 우리의 내측으로부터 용솟음쳐 오르는 영{靈}으 샘물을 마실 것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샘물이 항상 새롭게 내측 으로부터 용솟음쳐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단지 외측으로만 십자가를 앙모하면서 죄의 회 계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내측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서 있고, 그래서 우리가 항상 내측으로부터 성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회계를 통해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 는데 이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끈임없이 성화되어 갈 때 성령은 콸콸 용솟음쳐 오르는 샘물처럼 그의『거룩한 사랑』{聖愛}을 가지고 우리를 새롭게 살{生}게 만드는 것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성화의 영{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靈}의 은 사를 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영{靈}, 마음{心}, 몸{體}도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어 상시{常時} 성령의『궁전』이 되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1데살 5: 23}. 성령의『거룩 한 사랑』은 영{靈}의 제{諸} 은사{恩賜}보다 우선적으로 간구되어야 한다. 우리가 내측으 로부터 성화되고 영화{靈化}되어질 때만이 은사{恩賜}가 참으로 은사{恩賜}로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성령을 야기하는 성령의 체험은 십자가 신앙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십자가 신앙 을 떠나서 성령을 체험하려고 할 때 거기에는 성령이 아닌 다른 영{靈}이 같이 역사{役事} 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우리 안에 있는 영{靈}이 언제나 살아있는 구원 주{主}와 함쎄 있을 때, 성령은 성화의 영{靈}으로서 우리의 영{靈}의 오저{奧底}를 거룩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 마음{心}도, 몸{體}도 그의『거룩한 사랑』가운데 침잠되어지는 것이다. 우리 는 이러한 체험을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과『교제』{交際]엣 그 극치를 보려고 한다.이때 우리의 전신전령{全身全靈}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포용되고 그래서 무한한『기쁨』가운 데 神께의 찬미와 구원 주{主}께의 감사만이 있을 따름이다.
PS: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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