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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마티아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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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14 조회수1,648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3년 5월 14일 (수) -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오늘의 복음]  요한 15,9-17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복음의 향기]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모습을 지켜본 11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의 다른 형제들과 여러 여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 무렵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아간 이들의 앞잡이가 된 가리옷 유다에 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어 예언하신 말씀을 들려준다. 베드로는 시편을 인용하여 "그의 집을 폐허로 만드시고, 아무도 거기에 드는 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시편 69,25),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 주십시오"(시편 109,8) 라고 말한다. 시편 원문에는 "그들이 사는 부락을 돌밭으로 만드시고 천막에는 아무도 없게 하소서"와 "이제 그만 그의 명을 끊어버리고 그의 직책일랑 남이 맡게 하자" 라고 되어 있다. 사도들은 제비뽑기를 통하여 요한의 세례부터 예수님의 승천까지 줄곧 제자단과 함께 있었던 <마티아>를 뽑아 사도직분을 맡기고 예수부활의 증인 되게 하였다.(사도 1,12-26 참조 / 제1독서) 부활축제의 기쁨이 한창인 오늘 교회는 <가리옷 유다>의 자리를 이어 사도직분을 수행하게 된 <마티아> 사도의 축일을 지낸다.

 

오늘 주님의 사도단에 새로운 멤버가 되어 주님의 부활을 증언한 <마티아> 사도의 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제자 됨"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오늘 복음(요한 15,9-17)이 바로 그 관계의 정체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제2부에 해당되는 부분(13-21장)으로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고별사(13-17장)의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5,1) 라고 입을 여시면서 <참 포도나무> 비유말씀을 통하여 고별사의 둘째 부분을 시작하신다. "사랑"이란 끈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치를 도모하는 오늘 복음은 앞서간 <참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일치의 기원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음을 보게 된다. 스승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바로 하느님과 예수님, 즉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통한 일치를 그 원형으로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어떤 관계에 서 있는 지를 놀랍게도 <포도나무와 그 가지> 비유말씀을 통하여 쉽게 차근차근 가르치신다.

 

예수께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요약해 본다면,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이시며(1절), 제자들은 그 가지이며(5절), 포도나무의 가지인 제자들의 본분은 나무에 잘 머물러 있는 것이고, 잘 머물러 있을 때 "무슨 소원이든 구하는 대로 다 얻을 것"이며(7절), 그렇게 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8절)는 것이다. 이렇게 요약된 내용을 오늘 복음에 도입시키면 <예수와 제자의 관계> 및 <제자의 정체성>을 조명(照明)해 볼 수 있다. ① 우선 1절, 5절, 9절을 함께 생각한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포도나무인 예수를 가꾸고 사랑하신 것처럼 포도나무인 예수도 그 가지인 제자들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가지인 제자들은 나무인 예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제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② 다음은 4절, 7절, 12절을 연관지어 생각한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제자들이 예수를 떠나지 않고 또 예수의 말을 잘 간직한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인데, 이렇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제자들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9절)는 것이다. ③ 마지막으로 8절, 16절, 17절을 함께 생각한다: 제자들이 자신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맺게 되는 많은 열매를 통하여 예수의 아버지는 영광을 받게 된다. 먼저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제자들이 드러내는 영광은 아들의 영광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을 선택하여, 이들을 벗으로 삼아 파견하기 때문이다. 파견 중에 행하는 모든 일의 원리는 사랑이다. 따라서 17절에 계명으로 주어지는 사랑은 <아버지→아들→제자>의 범위를 넘어 <제자→세상>의 범위로 확충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서는 이 범주를 역순으로 생각하면 된다.<세상→제자→아들→아버지>◆

 

[종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인이 영광을 받지는 않습니다. 종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복종)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택하여 벗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면 다른 친구의 어깨도 함께 우쭐거려 집니다.(우정)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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