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15주간 목요일) | |||
---|---|---|---|---|
이전글 | 성서속의 사랑(13)- 하느님의 참얼굴 | |||
다음글 | 나에게 와서 쉬어라 | |||
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7-16 | 조회수1,468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 2003년 7월 17일 (목) -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1,28-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법의 멍에와 예수님의 멍에
오늘은 제헌절(制憲節)이다. 오늘은 1945년 해방 후 총선거를 통하여 형성된 제헌국회가 마련한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과 공포(1948년 7월 17일)를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이다. 1948년 제헌헌법은 그 동안 여덟 차례 개정을 거쳤고, 현행 헌법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의 합의에 의해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29일 공포되었다. 오늘날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기관을 창설하고 국가권력을 합리적으로 제약하는 국가의 기본법을 의미한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사회는 양심과 도덕, 풍습과 관습, 그리고 법률과 헌법의 조화로운 지배를 받는다. 올바른 양심과 도덕은 좋은 풍습과 관습을 만들어 주며, 이는 또다시 정감(情感)과 평화(平和)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준다.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이 개인적인 차등(差等)을 보이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률과 헌법이 등장한다. 법(法)이란 몇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또는 모든 사람들의 뜻을 모아 제정되는 것이기에 다같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준법정신(遵法精神)은 법을 실제로 지키려는 의지(意志)이며, 그 나라 국민들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한다. 선진(先進) 국민일수록 준법정신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문화수준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화수준을 높이자고 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법 이전에 사람은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양심과 도덕을 먼저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제헌절은 우리의 양심과 도덕이 인간적이고 보편적이지 못하여 법을 제정해야만 했던 현실을 통탄하면서, 이왕에 제정된 법을 모두가 잘 지키자는 의지를 재삼 다짐하는 날이다.
법(法)이란 무릇 한자어가 뜻하듯이 "물[水]이 가는[去] 것"이다. 절대 거꾸로 가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가며, 막히면 머물고, 넘치면 다시 가는 물의 흐름이 곧 법이요, 법은 극히 자연스런 이치(理致)라는 말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따라 자연스럽게 법의 이치를 꿰뚫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법은 인간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자연스러움을 제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법은 어떠한가? 어느 변호사의 말을 들으니 우리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법은 다 모아 놓았다고 한다. 독일, 미국, 일본의 좋은 법은 다 갔다 놓았다는 것이다. 법이 좋다는 말은 사람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법 이전에 사람은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양심과 도덕, 올바른 양심과 보편적인 도덕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 법(法)을 잘 몰라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蹂躪)당하고, 경제적 손해를 보며, 사회적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국민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법은 이 국민 앞에 잘못을 빌어야 한다. 강한 자에게는 법을 피할 길을 가르쳐주고 약한 자에게는 이 법, 저 법으로 올가미를 씌워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그런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613 가지의 법을 짊어지고 살았다.(금령 365개, 행령 248개) 이런 법 때문에 고생하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당신께로 초대하신다. 예수님께서 편히 쉬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께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법의 멍에를 벗겨주시고, 당신의 멍에를 지워주시고자 하신다. 예수님의 멍에는 법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르고 보편적인 양심과 도덕이며, 훈훈하고 정이 넘치는 관습과 풍습이다. 이는 자기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황금률: 마태 7,12)이며, 하느님과 이웃을 동시에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사랑의 이중계명: 마태 22,34-40)이다. 누구든지 사람은 법의 멍에든 예수님의 멍에든 하나를 지고 가며 살아야 한다. 법의 멍에는 사람을 노예로 만들지만, 예수님의 멍에는 사람을 겸손하고 온유하게 만든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예수님께 배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